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마르 2,22)
오래된 것은 익숙해진 것을 말합니다. 모든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익숙한 것은 ‘세상’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감지되는 것들에 점점 익숙해져 갑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맡고 맛보는 것들에 익숙해져가지요. 그래서 이 세상은 익숙한 것, 옛 것이고 헌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이 보이는 세상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규정과 법률이 필요하지요. 장사를 하는 데에는 상도덕이 필요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윤리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영원한 빛이신 분이고 하느님의 말씀이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이시지요. 예수님은 전혀 새로운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익숙한 세상, 옛 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르침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새로운 가르침, 즉 새로운 포도주를 담아내기 위한 새로운 부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의 육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영신을 위한 것, 영혼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을 새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를 합니다. 영원의 축복을 지상의 축복으로 뒤바꿔 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지상의 생명의 연장으로 뒤바꿔 버리곤 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고통의 가치, 인내와 겸손의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들어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니 그들은 귀머거리이고 장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바꾸어 내면을 선하게 가꿀 생각은 않고 외적으로 규정을 준수할 생각만 하지요. 왜냐하면 그게 쉽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한 시간 정도 미사에 나와 수동적으로 앉아 있는 것이 지금 불목하는 형제와 화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법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새로운 가르침은 새로운 영혼에 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익숙해진 세상의 것들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해석하기 시작하면 필히 어긋난 길을 걷게 됩니다. 영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의 영혼 안에 영원의 자리를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착하고 정의롭고 진실하고 겸손한 영혼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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