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명이 언제나 성공적이었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당신의 으뜸 제자들마저도 간혹 예수님을 오해하곤 했지요. 당신은 영혼을 이끌러 오신 분인데 그분에게서 세속적인 바램을 채우려는 이들이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영혼을 이끌기 위해서 고통과 희생은 예비된 것인데 제자들은 당신의 수난 예고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지요.
책 한 권 읽었다고 예수님을 이해한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피정 한 번 갔다와서 마음이 움직였다고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 마음이 꾸준히 이어지도록 의지적으로 노력해 나갈 때에 비로소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간적 약점에서 예수님이 얼마나 힘든 길을 걸으셨을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의 마음이 오늘과 다른 이들입니다. 어제는 성인이었다가 오늘은 다시 넘어져 있고, 또 조금 용기를 내는가 싶다가 또다시 쓰러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의 쓰러짐, 그 자체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으려는 나태함과 차갑게 식어버린 내면’입니다. 우리는 관습과 전통 속에서 종교생활을 하지만 ‘사랑’할 줄 모르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실제적인 사랑의 순간 앞에서 용기를 잃어버리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교무금을 꼬박꼬박 내고 판공을 보고 주일 미사를 빠지지는 않지만 정작 가장 가까이 머무는 이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는 것을 힘들어하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여전히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인간성’을 벗어버리셨기에 천주성 안에서 더 많은 권능으로 일을 하시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우리의 부당한 모습 앞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더 큰 고통을 감내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더는 육신으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은 없으시겠지만 그분의 거룩한 영은 여전히 수난 중에 있습니다.
정말 마음 아픈 일은 무릎이 까졌을 때가 아니라 영혼이 차갑게 식어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겪어보지 않고는 올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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