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위대한 성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성인에게서 비롯하는 모든 것이 마치 그 성인에게서 고유하게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닙니다. 모든 거룩함의 샘은 하느님이십니다. ‘거룩함’과 관련된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주셨기에 거룩해지는 것이지 그분이 원하지 않으셨고 주지 않으셨다면 그 누구도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대단한 일을 하신 분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모든 은총의 샘은 하느님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을 끝까지 쫓아가 박해한 악인으로 역사에 남을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를 선택하셨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물론 이 부르심에는 각자의 응답도 중요합니다. 하느님이 부르시고 이끄시는 것에 대응하는 응답이 필요하지요. 하느님은 인간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응답을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은총의 샘은 주님이지만 그 샘을 받아들이는 이는 인간이 되는 것이지요. 그 어떤 성인이든지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그것을 거절할 자유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성인전에 나오는 찬란한 이야기들은 성인들의 일생에서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나머지 시간들은 모두 인내와 성실성 안에서 견디고 또 견디어 내어야 했던 시간이지요. 따라서 그 어떤 성인이든지 그 길고 고된 길 가운데에서 다가오는 은총을 거절할 충분한 여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고귀한 부르심과 인간의 성실한 응답, 이 둘이 서로 만나서 세상에 기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르심 없는 응답이 존재할 수 없고, 응답 없이 강제로 이루어지는 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모두가 각자 저마다에 상응하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모두가 적절히 응답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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