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선비가 절벽을 따라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에 이백 보 정도 앞에 한 장님이 지팡이를 짚고 길을 두드리며 마주 오는 것이 보였다. 장님의 열걸음 정도 앞에 절벽 쪽으로 작은 꽃이 하나 피어 있었는데 향이 무척 강한 것이었다. 장님은 그만 그 향기에 취해 절벽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선비는 장님을 고함쳐 불렀다.
“이보슈!!!! 어이!!!!! 멈추시오 당장!!!!!”
장님은 그 부르짖음에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섰다. 선비는 허겁지겁 달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헉, 헉, 지금 당신이 걸어가던 쪽으로 엄청난 구렁텅이가 있었소. 그러니 그쪽으로 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혹시 가까운 곳에 가는 거라면 내가 이 절벽이 있는 곳을 벗어날 때까지 동행해 주겠소.”
헌데 장님의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선비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혹시 무슨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으시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소만, 초면에 그렇게 고함을 지르는 법이 어디있소?”
장님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선비에게 말을 내뱉었다. 선비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응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요?”
“좀 더 부드럽게 말을 걸고 주의를 줄 수도 있었을 것 아니요.”
선비는 기가 찼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미안하오. 앞으로는 내 조심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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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를 하는 이들은 언제나 상대를 생각해서 조언을 합니다. 그리고 조언을 듣는 사람들은 언제나 조언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조언 앞에서 딱히 기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었던 위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장님이 절벽에 나가 떨어지고 온 몸이 부서졌음에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면 그때에는 떨어지기 직전에 들었던 조언이 얼마나 필요했던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어둠의 길로 떨어지는 것을 가로막는 사람들 앞에서 감사하기는 커녕 기분 나빠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운명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죄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또 어둠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앞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빛은 자신을 태워야 하고, 소금은 자신을 녹여야 하지요.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감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박해하고 우리를 핍박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에 하느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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