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사도 10,34-35)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두 가지 뿐입니다. 하나는 하느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같은 표현을 조금만 달리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표현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곤 하지요. 그것을 아는 것은 두뇌가 아니라 삶인데 말입니다.
하느님을 절실히 사랑하는 이, 위 성경 구절의 표현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그리고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이, 즉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 걸까요?
무엇보다도 우선은 ‘하느님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규정된 규칙을 준수하는 것에 앞서서 ‘하느님을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매사의 모든 일을 하느님과 더불어 결정하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이들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규정준수’로 뒤바꾸어 버렸습니다. 정해놓은 몇 가지 규칙만 지키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육은 지키고 내적인 욕구의 절제는 지키지 않으며, 주일미사는 지키고 그날 저녁의 방탕한 술자리는 즐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가식이 나오고 위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재정립 되었을 때에, 사실 우리는 이미 두 번째 계명을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무시하면서 살거나 이웃에게 악을 행하면서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더해갈수록 모든 인류를 사랑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가 흠이 많거나, 과오가 있거나, 죄에 빠져 있더라도 그를 위해서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이들이 하느님과의 관계 정립 없이, 인간적인 사랑에만 골몰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내면의 사랑이 없이 사람의 인기를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들은 엇나가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참된 길인지 분별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사랑, 즉 진리와 공정과 선에 대한 사랑이 없는 모든 인간적 사랑은 공허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의로운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실천을 해야 하느님의 나라에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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