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사도 17,30)
무지의 시대가 존재했습니다. 사람들의 지성이 밝혀지지 않아서 많은 것들을 이해하기 힘든 시대였지요. 그래서 모세는 그들이 이혼장을 쓰고 서로 갈라서게끔 허락하기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더는 숨겨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드러났고 그분의 삶과 가르침이 드러났습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가를 보고 알게 되는 누구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개하고 그분을 뒤따르던가 아니면 있는 자리에 남아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던가 하는 결정이 남았지요.
물론 이러한 결정이 올바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분을 올바로 드러내주는 이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의 문제점은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과연 예수님을 올바로 드러내고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의 선택은 그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 되지요.
사람들이 올바로 회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신학 서적도, 교리책도 아니고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시고 우리를 빛으로 이끄시는 분이시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로 만나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살아내어야 하고 그분의 빛을 다른 이들에게 비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작업이 올바로 이루어진다면 예수님을 올바로 얻어만난 이들은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분을 따르던지 아니면 여전히 그분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자신의 옛 삶을 선택하던지 하는 결정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선택의 옵션이 아닙니다. 이는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고 마땅히 당신의 피조물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으십니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는 이는 단순히 어떤 옵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심판할 권리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운 분이시고 그들의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기회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심판하지 말라고 해서 아무런 분별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떤 방향을 향해서 가는지 분별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해서 올바로 나아가는 이들은 그들대로 더 열심히 나아가도록 돕고, 반대로 하느님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회유를 하든 경고를 하든 해서 그 가는 길에서 돌아설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의지적으로 엇나가는 이들을 향해서 지나치게 힘을 허비하는 것도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손에 맡기고 우리는 다른 영혼들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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