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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신부 사목서한(신앙과 실천) 한글 Español



12월 본당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신앙과 실천

지난 1년 동안을 '기도하는 가정'이라는 주제로 '주님의 기도'를 그 실천 사항으로 제시했습니다. 이제는 점검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과연 몇 가정이나 제가 알려드린 그 길을 따라오고 있을까요? 만일 아직 잊지 않고 그대로 실천하고 계신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복 받은 가정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하셨으나 여러분의 '끈기'는 받을 상급이 큽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이 벌써 한참 전에 그 지침을 잊어버리고 산 지가 오래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생각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생각으로는 누구나 높은 산도 올라가고 성인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반드시 삶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여러분 주위의 무엇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우선에 바뀌어야 할 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환경 이야기를 합니다. 주변이 더럽다고 투덜대지요. 그렇다면 본인부터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낙태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아이를 살해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은 성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깡패들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그런 그룹에 어울려서 다니느냐고 투덜대지만 정작 본인의 자녀들의 관심사는 잘 살피고 있는지요?

저는 투덜거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러분은 바뀌지 않더라고 투덜거리기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더 하느님 가까이로 이끌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가는 곳 어디든지 그러할 것입니다. 분명 미미하지만 제가 머무는 곳은 조금씩 바뀌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누구 탓을 할 때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바라볼 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간절히 추구하는 것에서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뜻 안에 서 있기를 가르쳤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걸어가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저는 비록 죄인이지만 제 가르침에는 오류가 없었고 여러분들이 충분히 이해하도록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아멘.


La Fe y La Practica

Por 1 año pasado, en el tema de "La Familia con La Oración" sugerí como la practica "Un Padre Nuestro". Ahora es el momento del probar. Cuantas familias están siguiendo por el camino que yo indiqué. Si algunos de ustedes todavía están practicando sin olvidar, su familia está bendecida totalmente. Ustedes completó por las cosas pequeñas, por eso se merecen por la recompensa grande por su perseverancia. Pero para mayores de ustedes, ahora es el momento que reconocerse nuevamente de que vivían olvidando ya hace mucho tiempo de lo que yo dije.

Nuestra Fe no es por el pensamiento. Por el pensamiento, cualquier persona puede subir una montaña altísima, y puede ser santo y santa. Pero nuestra Fe tiene que ser mostrada por la practica. Es inútil quejarse de que nada se cambia cerca de ustedes. Porque lo que tiene que ser cambiado es Usted mismo!

Algunos dicen de medio ambiente. Se quejan mucho de que su alrededor es bien sucio. Entonces el mismo no tiene que botar basura ademas tiene que empezar a limpiar. Otros dicen de aborto. Uno dice que como puede matar a un niño, pero ante eso tiene que revisarse que "yo no estoy agachado por deseo sexual". Otros dicen de los pandilleros. Uno se queda de ellos que como pueden entrar tan mal grupo, pero usted está cuidando bien de sus hijos y sus interés?

Yo no me quejaré nada. En vez de quejarse de que yo intenté mucho pero Ustedes nunca se cambió, sino voy a tratar mas para guiar a uno mas para Dios. Por dondequiera yo voy será lo mismo. Es bien pequeñísimo pero poco a poco va a ser cambiado donde yo quedo.

Ojalá que sea lo mismo donde Ustedes quedan. Ahora no es el momento de criticarse unos a otros sino es el momento que revisarse a si mismo. Dónde estamos y a dónde vamos?  Nosotros vamos a cosechar por lo que concentrábamos. Yo enseñé que estén dentro de la voluntad de Dios, y caminen por la voluntad de Él. Yo soy un pobre pecador pero creo que mi enseñanza no tenia error, y ustedes también entendieron bastantemente. Lo demás dejaré en mano de Dios, y voy a seguir caminando por mi camino en adelante. Que Dios los bendiga siempre. Amé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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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를 모시는 방법

- 성체를 손으로 모시는 게 신성모독이라는데 사실인가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일단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체를 입으로 직접 받아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수난 만찬때에 제자들과 모여 함께 나눈 빵을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입만 벌리고 받아 모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손으로 빵을 받아서 나누어 옆의 동료들에게 나누어가며 먹었습니다. 하지만 성체에 대한 공경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감에 따라 부스러기 하나라도 흘리지 않으려는 극진한 공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제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고 받아모시게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신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또 입으로 모시다가 자꾸 사제의 손에 침이 발리니 위생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손으로 받아 모시게 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과 같은 곳은 입으로 받아 모시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전부가 손으로 받아 모십니다. - 그럼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건가요? - 제가 보았을 때에는 성체에 대한 극진한 존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체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손으로 모시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할 필요는 없지요. 여기서는(볼리비아에서는) 입으로 모시는 사람과 손으로 모시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고 둘 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모시는 이들의 혀가 제 손에 자꾸만 닿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이는 굉장히 비위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모시는 것이 성체를 흘리고 떨어뜨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모시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지요. 다만 손으로 모실 때에는 미사 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왼손 아래에 오른손을 받치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왼손으로 성체를 받아 뒤의 사람이 앞으로 나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나서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손에 남은 부스러기를 함부로 다루지 말고 입으로 가져가서 혓바닥으로 깨끗이 처리할 필요가 있지요

신부님이랑 목사님은 뭐가 달라요?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미사 봉헌

미사를 봉헌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간단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말하자면 사무실에 가서 해당하는 비용을 내고 기도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올리는 행위를 ‘미사 봉헌’이라고 말합니다. 헌데 우리는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을까요? 미사를 봉헌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연옥 영혼들을 위한 효과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망자를 기억하면서 그를 위해서 드리는 미사는 그 영혼에게 효과가 미칩니다. 물론 무슨 효과가 얼마나 미칠지 우리는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수난의 공로로 인해서 그 영혼은 자비를 입게 되고 자신이 채워야 할 수난의 시간을 메꿀 수 있습니다. 이는 수많은 성인들의 실제적인 증언으로 우리가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서 드리는 미사도 그 효과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이 때에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정성은 받아들여지지만 그 은총의 효과는 하느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병자가 건강하기를 바랄 수 있지만 그의 건강의 회복은 오직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까지 아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들이 단순히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사를 드리는 우리의 정성이 중요한 것이지요. 돈을 지불하는 것이 우리의 정성의 일부분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지닌 돈은 결국 우리의 정성을 모아서 벌어들인 돈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물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봉헌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더욱 소중한 정성입니다. 미사에 참례해서 진심으로 그 미사의 말씀을 듣고 성찬의 전례에 온전히 참례하게 된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미사의 은총을 더욱 배가 될 것이 틀림 없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그런 미사 참례를 통해서 드리는 봉헌의 행위로 우리의 삶 자체는 변화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은총의 결과물은 바로 우리의 몫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진실한 마음으로 미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