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DESPEDIDA P. JOSEPH AMIGONIANAS


올 해를 끝으로 지금 일하는 이 본당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볼리비아를 떠나는 건 아니다.
차로 45분 걸리는 다른 본당으로 옮길 뿐이다.
주일 아침미사 후에 본당에서 환송식을 하는데 본당 근처 구역 반장들이 나와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우리로 치면, '옹헤야' 같은 느낌인데, 물론 멜로디는 완전히 다르다.
다만 한 구절 읊고 같은 노래를 반복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사실 들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서 가사가 적힌 종이를 한장 달라고 했다.
오늘 보니 이런 말들이 적혀 있었다. ㅋ

DESPEDIDA P. JOSEPH AMIGONIANAS(AMIGO;"친구" ANCIANA;"늙은 여자들"을 합쳐서 만든 말인 듯, 사전에 없음)
할매친구들의 요셉 신부 작별인사.

1. 마음을 다해 말하고 싶어요, 요셉 신부님이 가려고 고집하니까요.

2. 이 본당에 당신 삶을 두셨으니 올 때를 대비해서 대문을 잊지 마세요.

3. 성경강의 절대 잊지 않을께요, 우리에게 가정을 위한 많은 본보기를 주셨죠.
(2012년 한 해 동안 성경강의 마르코, 마태오, 루까, 요한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가르쳤음.)

4. 악마가 가까이에 있노라고 늘 우리에게 경고하셨어요, 선택을 잘 해야 하고 문을 잘 닫으라구요.
(늘 하던 강론 내용 중의 하나. 악마가 실존하며 늘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배회한다고 이야기함. 물론 그 반대편에 하느님과 그의 천상 군대도 우리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고 가르쳤음.)

5. 천상을 찾는다면, 욕심부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부님, 멋진 차가 있으면 말예요.
(이 역시 나의 단골 메뉴. 툭하면 자동차 이야기를 하면서 구입한 그날만 기쁘지 다음 날이면 기스 생기고 도리어 기분이 나빠지기만 한다고 곧잘 농담을 했음.)

6. 짐에 좋은 옷 잘 챙겨가시구요, 개도 데려가세요. 수녀님을 문 그 개요.
(우리집 캔이 꼰수엘로 수녀님을 물었다고 함. 사실무근이라고 생각함. 그냥 좋아서 잠시 덤볐겠지. ㅋ)

7. 이 본당에서는 고함소리가 들리죠. 근데 이제는 누가 우리 마하디또를 먹을까요?
(내가 강론할 때, 때로는 마이크를 쓰지 않고 고함 지를 때가 많아서 하는 말. 마이크를 써도 혼자 흥분해서는 고래고래 고함 지르는 때가 많았음. 마하디또는 이 나라 전통 음식으로 닭고기 야채죽과 비슷함. 물론 고기의 종류와 물의 양에 따라 여러 종류의 마하디또가 있음.)

8. 브레차(시골 공소들)는 동양 신부님을 기억해요. 왜냐면 신부님은 먹기 위해서 눈을 감거든요.
(눈이 작다는 거 놀리는 말임. ㅎㅎㅎ 실제로 한 시골 공동체에서 어떤 꼬마가 "아빠, 저 신부님은 왜 눈을 감고 밥을 먹어?"라고 한 적이 있어 한동안 회자되었음.)

9. 늙은이들은 상자에 돈이 있다고 했어요. 그럼 신부님에게 엄청 큰 선글라스를 사주자구요.
(사회복지 기금이 충분하다는 말. 이곳에 햇볓이 강해서 곧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모습을 풍자하는 말.)

10. 이 본당에서 여러분들에게 이걸 계속 강조합니다, 매일 주님의 기도든 뭐든 바치세요.
(2012년 한 해 동안 주님의 기도를 적어도 하루에 한 번 바치라고 계속 강조했음.)

11. 당신 인사하는 방법에는 아름다운 섬세함이 있죠, 입맞춤을 할 수 있도록 바닥까지 고개를 숙이시죠.
(한국 신부들이 인사할 때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빗댄 말.)

12. 입맞춤과 포옹으로 늙은 친구들이 그저 내일 보자고 말하고 싶네요.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성체를 모시는 방법

- 성체를 손으로 모시는 게 신성모독이라는데 사실인가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일단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체를 입으로 직접 받아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수난 만찬때에 제자들과 모여 함께 나눈 빵을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입만 벌리고 받아 모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손으로 빵을 받아서 나누어 옆의 동료들에게 나누어가며 먹었습니다. 하지만 성체에 대한 공경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감에 따라 부스러기 하나라도 흘리지 않으려는 극진한 공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제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고 받아모시게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신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또 입으로 모시다가 자꾸 사제의 손에 침이 발리니 위생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손으로 받아 모시게 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과 같은 곳은 입으로 받아 모시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전부가 손으로 받아 모십니다. - 그럼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건가요? - 제가 보았을 때에는 성체에 대한 극진한 존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체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손으로 모시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할 필요는 없지요. 여기서는(볼리비아에서는) 입으로 모시는 사람과 손으로 모시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고 둘 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모시는 이들의 혀가 제 손에 자꾸만 닿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이는 굉장히 비위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모시는 것이 성체를 흘리고 떨어뜨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모시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지요. 다만 손으로 모실 때에는 미사 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왼손 아래에 오른손을 받치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왼손으로 성체를 받아 뒤의 사람이 앞으로 나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나서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손에 남은 부스러기를 함부로 다루지 말고 입으로 가져가서 혓바닥으로 깨끗이 처리할 필요가 있지요

신부님이랑 목사님은 뭐가 달라요?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미사 봉헌

미사를 봉헌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간단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말하자면 사무실에 가서 해당하는 비용을 내고 기도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올리는 행위를 ‘미사 봉헌’이라고 말합니다. 헌데 우리는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을까요? 미사를 봉헌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연옥 영혼들을 위한 효과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망자를 기억하면서 그를 위해서 드리는 미사는 그 영혼에게 효과가 미칩니다. 물론 무슨 효과가 얼마나 미칠지 우리는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수난의 공로로 인해서 그 영혼은 자비를 입게 되고 자신이 채워야 할 수난의 시간을 메꿀 수 있습니다. 이는 수많은 성인들의 실제적인 증언으로 우리가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서 드리는 미사도 그 효과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이 때에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정성은 받아들여지지만 그 은총의 효과는 하느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병자가 건강하기를 바랄 수 있지만 그의 건강의 회복은 오직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까지 아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들이 단순히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사를 드리는 우리의 정성이 중요한 것이지요. 돈을 지불하는 것이 우리의 정성의 일부분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지닌 돈은 결국 우리의 정성을 모아서 벌어들인 돈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물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봉헌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더욱 소중한 정성입니다. 미사에 참례해서 진심으로 그 미사의 말씀을 듣고 성찬의 전례에 온전히 참례하게 된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미사의 은총을 더욱 배가 될 것이 틀림 없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그런 미사 참례를 통해서 드리는 봉헌의 행위로 우리의 삶 자체는 변화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은총의 결과물은 바로 우리의 몫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진실한 마음으로 미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