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폭행을 당한다"
두드려 맞는다, 얻어 맞는다는 이야기이다. 왜냐면 하늘 나라는 대항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늘나라는 사람들에게 가만가만 조용히 다가가서 그 열매를 쥐어준다.
하늘나라는 심겨진 씨앗이 싹이 트듯이 어느새 자라나는 것이고,
밀가루 반죽에 섞여 들어간 누룩이 부풀듯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하늘나라가 힘을 쓰는 자들, 폭력을 쓰는 자들에 의해서 폭행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설명으로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이해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힘'에 대해서 알아보았으면 한다.
'힘'이라는 것은 더 센 것이 덜 센 것을 지배할 수 있다.
'힘'이 통용되는 곳에서는 '더 많이' 가지면 우세하고
'더 높은' 지위에 있으면 우세하다.
'힘'이라는 것은 '재물'과도 크게 연관된 것으로서
심지어는 사고 팔 수도 있다.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한다는 의미는
바로 하늘나라가 이런 이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높이 오르려 하는 이들에 의해
수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설명이 모자란다.
다른 편으로 이해를 하기 위해서,
우리의 '천국관', '하늘나라에 대한 관념'을 살펴보자.
천국은 어떻게 해야 들어가는가?
10계명을 잘 지키고,
주일미사 빠지지 않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모든 성사활동을 충실히 채우고...
이런 요구조건들이 주욱 나열된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신자들은 '두려움'의 신앙생활을 한다.
뭔가를 채우지 못한 건 아닌지, 뭔가를 어기는 건 아닌지,
무슨 조건을 더 채워야 하는지... 이리 저리 살피느라 정작 중심을 잃는다.
하지만 하늘나라는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하늘나라는 자신의 자유로 '사랑'하려는 이들에게 주어진다.
'하늘나라'를 자기 손아귀에 쥔 것처럼 행세하며 사람들을 휘어 잡으려는 세력이 있다.
곳곳에 퍼져 있어서 어디에서든 관찰할 수 있다.
이러이러한 걸 해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규정하고,
이러이러한 것을 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 부류다.
마치 어느 회사 입사시험이라도 치듯이,
이러이러한 조건들을 채워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받아든 신청서도 찢어 버리겠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회사가 아니다.
입사 신청서도 필요없다.
이 땅에 태어난 어느 인간이라도 꿈꾸어 볼 수 있고,
그저 하느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맞추기만 하면 된다.
'폭력을 쓰는 자들'은 실제로 하늘나라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스스로도 별로 들어갈 노력을 하지 않는 자들,
전혀 엉뚱한 하늘 나라를 상상하고 그리고 들어갈 생각을 하는 자들로서,
이들은 그 나라에 들어가려는 작은 자들마저 그 앞길을 가로막기가 일쑤다.
그야말로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셈이고,
회칠한 무덤을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밟고 다니는 셈이다.
속지 않도록 조심하자.
하늘나라는 하느님의 권능이 떨쳐지는 곳이고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었으며,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들어가는 곳이다.
폭력을 쓰는 자들을 조심하고,
여러분 안에 간직된 믿음의 씨앗을 키워 나가도록 하라.
내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이유를 이해할까 의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