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 축일 강론)
육적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관계 가운데에서 단연 으뜸은 '가족관계'입니다.
같은 학교를 나오고 같은 지역에 아무리 산다고 해도,
피로 맺어진 끈끈한 관계는 탄생 순간 이미 결정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또한 이러한 혈연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하지만 때로 예수님은 이러한 성모님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을 몇 가지 남기곤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오늘 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룻밤을 꼬박 아들을 찾아 헤멘 성모님에게 예수님께서 무심코 던지는 말입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성경의 표현 되로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이런 표현을 앞에 두고
당장에라도 엉덩이를 세차게 때려 주어야 직성이 풀릴 판이겠지만,
믿음의 어머니인 성모님은 그저 이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한 가지 특징인 '알 수 없음'을 만나게 되고,
그에 대한 성모님의 모범적인 신앙의 모습인 '마음 속에 간직함'을 배웁니다.)
결국 이 일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진가가 밝혀지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진정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두 알고 있고,
예수님이 당시에 하신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어렴풋이나마 이해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셨고,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에 그 아들 역시 마땅히 머물러야 하였지만,
하느님은 단순히 건물로서의 장소가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에 머무르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이 당신이 마련한 가족의 품에서 30여년간을 순종하며 지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뜻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잘 드러납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물론 이 부분 외에도 1독서에서 그리고 2독서의 나머지 부분에서 가족 관계 안에서 서로 이루어져야 할 하느님의 뜻이 잘 설명되고 있으니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절대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부모님은 '하느님'이시고
우리의 최종 의사는 하느님에게 봉헌되어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영적인 가족 관계는 혈연의 가족 관계마저 초월합니다.
예컨대 자기 가족이 옳지 않은 일에 가담하고 있을 때에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최대한 가족을 설득해야 하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보다 참된 가족을 위해서 혈연 마저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는 특별한 경우(가족이 마피아라던지 모두 도둑이라던지)에 한하는 이야기이고
나머지 일반적인 경우에는 앞서 독서의 말씀처럼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아멘.
육적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관계 가운데에서 단연 으뜸은 '가족관계'입니다.
같은 학교를 나오고 같은 지역에 아무리 산다고 해도,
피로 맺어진 끈끈한 관계는 탄생 순간 이미 결정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또한 이러한 혈연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하지만 때로 예수님은 이러한 성모님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을 몇 가지 남기곤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오늘 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룻밤을 꼬박 아들을 찾아 헤멘 성모님에게 예수님께서 무심코 던지는 말입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성경의 표현 되로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이런 표현을 앞에 두고
당장에라도 엉덩이를 세차게 때려 주어야 직성이 풀릴 판이겠지만,
믿음의 어머니인 성모님은 그저 이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한 가지 특징인 '알 수 없음'을 만나게 되고,
그에 대한 성모님의 모범적인 신앙의 모습인 '마음 속에 간직함'을 배웁니다.)
결국 이 일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진가가 밝혀지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진정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두 알고 있고,
예수님이 당시에 하신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어렴풋이나마 이해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셨고,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에 그 아들 역시 마땅히 머물러야 하였지만,
하느님은 단순히 건물로서의 장소가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에 머무르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이 당신이 마련한 가족의 품에서 30여년간을 순종하며 지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뜻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잘 드러납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물론 이 부분 외에도 1독서에서 그리고 2독서의 나머지 부분에서 가족 관계 안에서 서로 이루어져야 할 하느님의 뜻이 잘 설명되고 있으니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절대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부모님은 '하느님'이시고
우리의 최종 의사는 하느님에게 봉헌되어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영적인 가족 관계는 혈연의 가족 관계마저 초월합니다.
예컨대 자기 가족이 옳지 않은 일에 가담하고 있을 때에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최대한 가족을 설득해야 하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보다 참된 가족을 위해서 혈연 마저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는 특별한 경우(가족이 마피아라던지 모두 도둑이라던지)에 한하는 이야기이고
나머지 일반적인 경우에는 앞서 독서의 말씀처럼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