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우리는 두 종류의 하느님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원하는 하느님입니다.
그 하느님은 언젠가 내 안에 간직한 바램을 이루어주실 분으로
우리가 간절히 간절히 기다리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구세주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을 어둠에서 구원해주실 분'
그리고 예수님의 첫모습, 치유하시는 모습, 기적을 일으키는 모습에서
제자들은 그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는 열렬히 환호하고 따라갔지요.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실패 그 자체였습니다.
스승은 최악의 사형도구인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버렸고,
실망한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 갈길을 가고 맙니다.
우리 역시도 이런 하느님을 기다리고 있다면
언젠가는 실망해 버리고 제 갈길을 가게 되고 맙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하느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이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다가오십니다.
이 분은 우리의 하찮은 바램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들어높여,
우리의 바램의 수준을 당신에게로 격상시키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이 주시려는 것, 선물하시려는 것은
우리가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것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느 부분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알아뵙지 못하고 많은 경우에 무시해 왔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성탄의 예수님을 기다리고 미사 중에 맞이하듯이
사람들 가운데서 주목받고 들어높여져 다가오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서 신음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변장에도 엄청 능하셔서 우리가 절대로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어느 순간 당신을 드러 내시곤 하십니다.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원수들 안에서,
길가다 무시해버린 거지들 안에서,
우리 가족 가운데에서 가장 내가 무시하고 천시한 사람 안에서,
당신은 꽁꽁 숨어 계시곤 하십니다.
결국 우리는 어느 순간엔가 그 분을 만나게 되고,
그 동안의 우리의 무시를 떠올리며 가슴아파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하느님을 알아보고 제대로 섬긴 이들,
하루하루를 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부와 명예와 권력과
모든 자존심을 조금씩 죽이면서 살아온 이들에게
이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 즉 '부활'이 되어 버립니다.
당신은 어떤 하느님을 기다리고 계시는지요?
성탄의 황홀한 종소리 속에 저 성탄 트리 꼭대기에 달린 별을 바라보고 계시는지요?
아니면 이 시간에도 소외되고 헐벗고 고통받는 이웃을 바라보고 계시는지요?
성모님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지
'내 뜻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이 아닙니다.
행여 지금 이 세상의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것이 하늘 나라에서 현세의 것을 10배, 100배로 보상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면
여전히 우리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받을 것은 현세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거대한 어두운 밤이 펼쳐져 있습니다.
도무지 잡으려 애를 써도 잡히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너무나 거대해서
우리 이성이라는 손아귀에 쥐는 순간 이미 당신의 뜻에서 변색되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제가 무슨 아리송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ㅎㅎㅎ
하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