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이 '신앙의 해'에 관해서 설명해 놓은 작은 책자를 읽는 중이다.
솔직히... 좀 난해하다.
신자들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더 큰 문제는,
뭘 하자는 것인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 신앙을 쇄신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쇄신을 해 볼까요?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믿고,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미사 많이 참여하세요.
삶으로도 사시구요."
이런 말을 초반에 앞세우고는 신앙에 대해서 성경의 인물들의 예시를 드는데...
아무래도 교황님께서 지나치게 공적인 위치에 있는 분인지라
성경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따오기는 하지만
삶의 풍파를 다 겪고는 허무함마저 겪는 노년들,
지금 아이들 키운다고 정신없는 아주머니들이나,
직장 생활에 하루하루 고달픈 중년들,
이상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두려움에 휩싸인 청년들,
답답한 학교 생활이 미칠 것 같은 청소년들이나,
어린 시절부터 '생활의 두려움'에 닥달을 당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이 신앙의 해라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부족한 느낌이다.
(내 생각에는 이 책자를 과연 몇 명이나 읽겠나 싶기도 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개콘'을 볼 걸? ㅎㅎㅎ)
왜 그런걸까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좀 더 구체화 시켜서 어느 하나에 집중했으면 좋으련만,
결국 교황님은 이것 저것 다 놓칠 수가 없으신 모양이다.
신자들은 '신앙', '믿는다'는 것조차 제대로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데,
그걸 그냥 '믿음'이라는 단어에 묶어서는 '기정사실화'해서
말을 진행시키니 시작부터 엇나간 단추를 잠그는 셈이다.
사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이 좀 방대하긴 하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다시 찬찬히 시작해 보아야겠다.
아직 많은 이들은 신앙의 길을 시작하기 이전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많은 사제들은 각 공동체의 생활 범위 안에서
그런 어둠의 흐름들을 끊어내는 수술을 감행해야 한다.
오늘도 난 미사 중에,
우리 공동체의 문제 중 하나인, 가정 내 성추행 및 성폭행을 신자들 앞에서 고발했고,
그들이 그 삶을 뉘우치고 회개하도록 강조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런 수난을 당하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자 노력했다.
이런 나의 가르침은 한국에서는 아마 거의 쓸모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그렇게 만날 가족들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질적인 것에 사로잡힌 관심사를 끊어내어야 한다.
세상적으로만 흘러가는 시선들을 들어올려 하느님을 바라보게 도와 주어야 한다.
우리 신부님들이 잘 하시겠지.
멀리서 기도할 뿐이다.
신앙의 해를 시작하자.
앞으로 나아가는 길도 알려줘야 하겠지만,
우리가 들어선 어둠의 길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도록 하자.
지금 내 옷에서 땀냄새가 나 죽을 지경인데
세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는 커녕,
옷에다 뭘 덕지덕지 꾸미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면
그만큼 안쓰러운 모습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