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나에게 끌어오는가, 나를 복음으로 끌어가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들 복음을 나에게 끌어오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것에다 그리스도의 메세지를 끌어와 쓰지요.
예컨대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헌데 상대가 정말 궁한 사정이 생겨서 갚지 않지요. 하지만 이 돈을 빌려준 이는 자신에게 아직 여유가 충분히 있으면서도 손해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상대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따지러’ 가서는 말을 합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 몰라? 어떻게 내 돈을 꿀꺽할 수 있어? 당장 내놓지 못해?” 라고 말이지요. 이해가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복음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끌어다 쓰고 있는 셈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예수님께서 ‘일곱번에 일흔 번을 용서하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을 따라라, 그 밖의 것들은 모두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와 같은 말씀도 하셨기 때문이지요.
나를 복음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결국 나를 버리고 그분의 십자가를 나누어 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엄청난 일이지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쉽고 편한 쪽’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을 나에게 끌어당기는 일입니다.
이 방향성의 진리를 깨달았다면 오늘부터 당장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말뿐인 사람, 여전히 복음을 필요할 때에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일 뿐입니다.
예컨대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헌데 상대가 정말 궁한 사정이 생겨서 갚지 않지요. 하지만 이 돈을 빌려준 이는 자신에게 아직 여유가 충분히 있으면서도 손해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상대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따지러’ 가서는 말을 합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 몰라? 어떻게 내 돈을 꿀꺽할 수 있어? 당장 내놓지 못해?” 라고 말이지요. 이해가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복음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끌어다 쓰고 있는 셈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예수님께서 ‘일곱번에 일흔 번을 용서하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을 따라라, 그 밖의 것들은 모두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와 같은 말씀도 하셨기 때문이지요.
나를 복음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결국 나를 버리고 그분의 십자가를 나누어 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엄청난 일이지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쉽고 편한 쪽’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을 나에게 끌어당기는 일입니다.
이 방향성의 진리를 깨달았다면 오늘부터 당장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말뿐인 사람, 여전히 복음을 필요할 때에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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