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제 뿌리를 찾게 마련이고 사회 안에서 자신이 ‘소속감’을 느낄 공간을 마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특히 피를 나눈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혈연’이라고 표현되는 것이지요.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는 것은 적지 않은 DNA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사제가 되고 또 이방의 선교사로 일을 하면서 깨닫고 배우게 된 것이 있습니다. 혈연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끈끈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반대로 ‘신앙으로 맺어진 가족관계’가 더욱 친밀하고 끈끈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같은 피를 받았다고 둘의 내면이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같은 가족 안에서도 마음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그러니 한다리 건너고 나면 ‘피를 나눈다’는 것의 의미는 더욱 상쇄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여기에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셉으로 인해서 다윗 가문이었지만 실제로 그분의 영은 하느님에게서 났으며 고향에서는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았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아직도 신학생 시절 어느 할아버지댁을 방문했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야, 신부질 할라꼬 카는기가?”
그렇습니다. 저 지금 ‘신부질’하고 있습니다.
훗날 하느님은 서로 일치하는 마음들을 모아서 새로운 가족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서로 ‘친척’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의 내면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전혀 아무런 연관도 없던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모이는 일이 허다할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특히 피를 나눈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혈연’이라고 표현되는 것이지요.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는 것은 적지 않은 DNA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사제가 되고 또 이방의 선교사로 일을 하면서 깨닫고 배우게 된 것이 있습니다. 혈연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끈끈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반대로 ‘신앙으로 맺어진 가족관계’가 더욱 친밀하고 끈끈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같은 피를 받았다고 둘의 내면이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같은 가족 안에서도 마음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그러니 한다리 건너고 나면 ‘피를 나눈다’는 것의 의미는 더욱 상쇄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여기에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셉으로 인해서 다윗 가문이었지만 실제로 그분의 영은 하느님에게서 났으며 고향에서는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았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아직도 신학생 시절 어느 할아버지댁을 방문했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야, 신부질 할라꼬 카는기가?”
그렇습니다. 저 지금 ‘신부질’하고 있습니다.
훗날 하느님은 서로 일치하는 마음들을 모아서 새로운 가족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서로 ‘친척’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의 내면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전혀 아무런 연관도 없던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모이는 일이 허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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