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루카 10,7)
한국 교회의 사제들은 임기가 있고 때가 되면 떠나야 합니다. 말 그대로 이집 저집을 옮겨 다니는 것이지요. 문제는 그런 외적인 형태가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장소를 옮겨다닐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은 ‘안락에 대한 추구를 끊어라’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파견을 받아 가서 충분히 거기에서 살 수 있음에도 다른 집을 찾아 떠나는 것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좀 더 편한 환경, 즉 기왕이면 따뜻한 물도 나오고, 사람들이 더 친절하며, 음식이 더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지요.
사제는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본당에 가면 가난한 본당에 머무는 대로 살아야 하고, 부유한 본당에 가면 부유한 게 싫어도 거기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외적으로는 옮겨 다니지만 실제로는 전혀 옮겨 다니지 않고 오직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 파견을 받아 갔다가 장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옮긴다는 수도자, 어느 지역에 파견을 받아 가서 신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옮기는 사제, 주임 사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본당을 바꿔 다니는 신자들은 말 그대로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인 셈입니다.
제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 다니다가는 결국 굶어 죽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일단은 먼저 하느님을 갈구하는 배고픔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배고픔을 느끼면 우리 입에 들어가는 그 어떤 음식이든지 맛있게 느껴질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사제들은 임기가 있고 때가 되면 떠나야 합니다. 말 그대로 이집 저집을 옮겨 다니는 것이지요. 문제는 그런 외적인 형태가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장소를 옮겨다닐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은 ‘안락에 대한 추구를 끊어라’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파견을 받아 가서 충분히 거기에서 살 수 있음에도 다른 집을 찾아 떠나는 것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좀 더 편한 환경, 즉 기왕이면 따뜻한 물도 나오고, 사람들이 더 친절하며, 음식이 더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지요.
사제는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본당에 가면 가난한 본당에 머무는 대로 살아야 하고, 부유한 본당에 가면 부유한 게 싫어도 거기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외적으로는 옮겨 다니지만 실제로는 전혀 옮겨 다니지 않고 오직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 파견을 받아 갔다가 장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옮긴다는 수도자, 어느 지역에 파견을 받아 가서 신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옮기는 사제, 주임 사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본당을 바꿔 다니는 신자들은 말 그대로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인 셈입니다.
제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 다니다가는 결국 굶어 죽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일단은 먼저 하느님을 갈구하는 배고픔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배고픔을 느끼면 우리 입에 들어가는 그 어떤 음식이든지 맛있게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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