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르 4,25)
자석은 쇠를 끌어당깁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쇳가루를 모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자석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자석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쇳가루가 모일 것입니다.
우리가 끌어당기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진 자’라는 것의 의미를 물질적인 차원으로 전락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가진 자는 ‘하느님’을 가진 자입니다. 하지만 영적 거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뭔가 손에 잡긴 잡았는데 전혀 엉뚱한 것이 들려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토끼를 잡는다고 덫을 놓아 줄을 잡아 당겼는데 토끼는 어느새 빠져나가고 없고 줄만 당기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토끼를 잡으려면 토끼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주로 머무르고 어떤 길로 다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끼의 마음이 되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하는 데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고민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쇠를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하느님을 나에게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토끼를 연구하듯이 하느님의 선호를 연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마치 교회가 모두 연구해서 결론을 지어버린 것 같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토끼가 덫을 빠져 나갔듯이 교회가 붙들어 놓았다고 생각하는 하느님은 이미 그곳을 빠져나가 계신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영세자의 숫자를 바라보시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성전의 크기와 수를 헤아리시는 게 아니라 얼마만한 열정으로 당신을 사랑하는가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전례의 ‘정확도’를 따지시는 분이 아니라 감사하는 이들을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진실함이 하느님을 끌어들이는 자석의 힘입니다. 겸손이 그분의 사랑을 이끌어애는 가장 훌륭한 길입니다. 스스로 낮아지는 자는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토끼가 절로 다가온다면 덫이 필요없는 법입니다.
자석은 쇠를 끌어당깁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쇳가루를 모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자석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자석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쇳가루가 모일 것입니다.
우리가 끌어당기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진 자’라는 것의 의미를 물질적인 차원으로 전락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가진 자는 ‘하느님’을 가진 자입니다. 하지만 영적 거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뭔가 손에 잡긴 잡았는데 전혀 엉뚱한 것이 들려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토끼를 잡는다고 덫을 놓아 줄을 잡아 당겼는데 토끼는 어느새 빠져나가고 없고 줄만 당기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토끼를 잡으려면 토끼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주로 머무르고 어떤 길로 다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끼의 마음이 되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하는 데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고민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쇠를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하느님을 나에게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토끼를 연구하듯이 하느님의 선호를 연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마치 교회가 모두 연구해서 결론을 지어버린 것 같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토끼가 덫을 빠져 나갔듯이 교회가 붙들어 놓았다고 생각하는 하느님은 이미 그곳을 빠져나가 계신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영세자의 숫자를 바라보시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성전의 크기와 수를 헤아리시는 게 아니라 얼마만한 열정으로 당신을 사랑하는가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전례의 ‘정확도’를 따지시는 분이 아니라 감사하는 이들을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진실함이 하느님을 끌어들이는 자석의 힘입니다. 겸손이 그분의 사랑을 이끌어애는 가장 훌륭한 길입니다. 스스로 낮아지는 자는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토끼가 절로 다가온다면 덫이 필요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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