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저마다의 관심사가 있고 사실 자기 말고 남들에게는 전혀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을 대화의 주제로 삼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시야를 넓히면 보이는 것들이 있지만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보이는 것만 보려 하는 것입니다.
연령별로 곧잘 거론되는 주제들이 있고, 직업별로 거론되는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최근 영화나 시사 문제가 거론됩니다. 물론 하느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신앙생활’이라는 또다른 주제일 뿐, 정말 마음 속에 간직한 하느님의 신앙을 나누는 사람을 찾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자신을 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아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깨지 않고서는 진솔함을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진솔한 사람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를 깨고 속살을 내비쳤을 때에 그 속살에 칼을 깊숙이 박아넣지 않을 사람을 만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포장합니다. 진솔한 마음은 숨긴 채로 껍데기를 들이대지요. 그러다보니 껍데기에 굳은 살이 배겨서 더욱더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터놓고 정말 진중하게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나눌 사람이 아쉬운 때입니다.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시야를 넓히면 보이는 것들이 있지만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보이는 것만 보려 하는 것입니다.
연령별로 곧잘 거론되는 주제들이 있고, 직업별로 거론되는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최근 영화나 시사 문제가 거론됩니다. 물론 하느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신앙생활’이라는 또다른 주제일 뿐, 정말 마음 속에 간직한 하느님의 신앙을 나누는 사람을 찾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자신을 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아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깨지 않고서는 진솔함을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진솔한 사람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를 깨고 속살을 내비쳤을 때에 그 속살에 칼을 깊숙이 박아넣지 않을 사람을 만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포장합니다. 진솔한 마음은 숨긴 채로 껍데기를 들이대지요. 그러다보니 껍데기에 굳은 살이 배겨서 더욱더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터놓고 정말 진중하게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나눌 사람이 아쉬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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