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에 대해서 사람들은 ‘발작적 웃음’과 착각을 합니다. 무조건 낄낄거리면 기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닙니다. 영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사람도 재치있는 무언가를 접하면 낄낄거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담아놓은 것이 텔레비전이지요. 텔레비전의 여러가지 장치들은 우리가 거기에 빠져들게 만들고 같이 낄낄거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우리의 현실이 다가오고 그 현실 안에서 ‘우울함’을 체험하게 되지요. 우리의 발작적 웃음이 크면 클수록 그 우울함의 정도는 더 심해져 가는 셈입니다.
신앙적 의미의 기쁨은 ‘충만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이 채워져 우러나오는 기쁨이지요. 즉, 우리가 죽어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운명,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굳건한 믿음 안에서 우리의 기쁨은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기뻐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 근본적인 기쁨 안에서 우리는 다가오는 모든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즐기게 됩니다. 내면의 충만함 속에서 우리는 세상의 슬픔도, 세상의 기쁨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더는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셈입니다.
내면이 충실한 사람,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신앙적 의미의 기쁨은 ‘충만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이 채워져 우러나오는 기쁨이지요. 즉, 우리가 죽어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운명,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굳건한 믿음 안에서 우리의 기쁨은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기뻐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 근본적인 기쁨 안에서 우리는 다가오는 모든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즐기게 됩니다. 내면의 충만함 속에서 우리는 세상의 슬픔도, 세상의 기쁨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더는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셈입니다.
내면이 충실한 사람,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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