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루카 5,14)
자기 PR 시대라는 지금의 시대는 스스로를 광고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알려서 사람들이 알게 하고 자신을 판매해야 하는 시대이지요. 헌데 예수님의 면모에서는 이런 시대적 흐름과 전혀 맞지 않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즉, 예수님은 남들이 아무도 알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왜?
우리는 생각합니다. 선교를 하려면 알려야 하지 않나?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서 그들을 끌어모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하느님에 대해서 가르치면 더욱 좋지 않나?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때에 무엇을 알리고 있는가가 중요한 일입니다.
과연 무엇이 알려지고 있고,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이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선교를 하러 가서 엉뚱한 일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이끌려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선교할 수 있습니다. 병원과 학교를 짓고, 가난한 가정과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줄 수 있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잘 모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선교가 아닙니다. 그건 대기업 판촉 행사와 비슷합니다. 그렇게 돈을 보고 다가오는 이들, 선교사가 가져다 뿌리는 물질적인 혜택으로 다가오는 이들은 그렇게 다시 물러갑니다. 아니, 그렇게 물러가면 다행입니다. 그런 이들이 교회 내에 ‘실세’로 자리잡기 시작하면 훗날 다가와서 일해야 하는 선교사에게 큰 곤욕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그들의 탐욕을 정돈하지 않고서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핵심은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어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에 물질적 지원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이 주된 것인지를 선교사 스스로 분별하지 않으면 스스로 혼동하게 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고치십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 치유의 결과가 온전히 그에게만 머무르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고 싶었지 육체적 질병의 ‘치유사’가 되고 싶지는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셨고 결국 예수님은 당신이 행한 자선의 치유의 결과로 피신을 하셔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에게도 하느님과 따로 만나는 고독의 시간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루카 5,15-16)
자기 PR 시대라는 지금의 시대는 스스로를 광고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알려서 사람들이 알게 하고 자신을 판매해야 하는 시대이지요. 헌데 예수님의 면모에서는 이런 시대적 흐름과 전혀 맞지 않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즉, 예수님은 남들이 아무도 알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왜?
우리는 생각합니다. 선교를 하려면 알려야 하지 않나?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서 그들을 끌어모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하느님에 대해서 가르치면 더욱 좋지 않나?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때에 무엇을 알리고 있는가가 중요한 일입니다.
과연 무엇이 알려지고 있고,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이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선교를 하러 가서 엉뚱한 일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이끌려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선교할 수 있습니다. 병원과 학교를 짓고, 가난한 가정과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줄 수 있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잘 모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선교가 아닙니다. 그건 대기업 판촉 행사와 비슷합니다. 그렇게 돈을 보고 다가오는 이들, 선교사가 가져다 뿌리는 물질적인 혜택으로 다가오는 이들은 그렇게 다시 물러갑니다. 아니, 그렇게 물러가면 다행입니다. 그런 이들이 교회 내에 ‘실세’로 자리잡기 시작하면 훗날 다가와서 일해야 하는 선교사에게 큰 곤욕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그들의 탐욕을 정돈하지 않고서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핵심은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어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에 물질적 지원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이 주된 것인지를 선교사 스스로 분별하지 않으면 스스로 혼동하게 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고치십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 치유의 결과가 온전히 그에게만 머무르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고 싶었지 육체적 질병의 ‘치유사’가 되고 싶지는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셨고 결국 예수님은 당신이 행한 자선의 치유의 결과로 피신을 하셔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에게도 하느님과 따로 만나는 고독의 시간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루카 5,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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