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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도 될까요?

어제 낮에 페이스북 메신저로 문자가 왔습니다. 볼리비아에서 제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한 교리교사인데 인터넷으로 안부를 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잘 지낸다고 하고 별일 없느냐고 물었지요. 아니나다를까 별일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해,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지 말아.”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하고 싶은 걸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면 안 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될까요? 됩니다. 하지만 훔쳐 먹거나, 배가 그득한데도 꾸역꾸역 밀어 넣으면 안 됩니다. 술을 마셔도 될까요? 됩니다. 하지만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면 안 됩니다. 거의 모든 일에 이 기초적인 원리를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예외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이를 분별할 내적 요소가 많이 부족하기에 보호자의 지도가 필요하지요.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이 교리교사는 사귀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에게 묻지도 않고 거절했을 것입니다. 누군가 다가오니 사귀어보고는 싶은데 그래도 가능한지를 저에게 묻는 것이지요. 저에게 이미 배운 바가 있어서 세상이 생각처럼 그리 ‘환상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저의 의견을 물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압니다. 이 친구는 크게 엇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 안에서 실수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아는 이 친구는 그런 실수들을 만회하고 또 실수들 안에서도 배울 자세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많이 사랑하고 많이 아파하고 그렇게 열심히 배워서 훗날 하느님에게 더 헌신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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