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쉬움이 없으면 ‘추구’하는 것이 줄어들게 됩니다. 모든 것이 가득차 있으면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때부터는 이미 들어차 있는 것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이미 먹을 것이 즐비한 상황에서 사람은 ‘긴장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굶지 않을까를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때부터는 별다른 걱정이 없어지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이윤추구단체’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모든 것이 채워져 있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쾌락을 이끌어낼 것을 고민합니다.
결국 만들어야 하는 것이 ‘새로운 걱정’입니다. 사람들이 걱정이 없어지고나면 긴장감이 없고 아쉬운 것이 없어지니 ‘걱정’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를 파는 것이 가능한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아마 냉장고를 집안의 장식품으로라도 사게 만들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그런 필요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라면 아마 사막에 온열기를 팔 수도 있을 것입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이들이 늘어갑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평화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이미 가득 차 있고 남은 것은 정말 신경써야 할 일에 내어 놓아야 하는데 새로운 걱정이 생겨나고 그것을 위해서 안달복달하기 시작합니다.
나눌 여력따위는 없습니다. 자기 핸드백을 신종 상품으로 새로 사야 하기 때문에 나눠줄 여유가 없습니다. 아니, 사실은 ‘나눈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누는 것도 뭔가 이득이 있을 때에 ‘투자’하는 개념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정말 상대를 위한 필요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주고 나면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하느님에게라도 따질 기세로 나눕니다. 그러니 ‘받을 상은 이미 받은 셈’입니다.
실컷 오른손으로 자선을 하고 그것을 왼손 만이 아니라 가능하면 온 세상이 다 알게 만드는 이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너끈히 명예를 얻었으니 다른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과욕일 뿐입니다.
이미 먹을 것이 즐비한 상황에서 사람은 ‘긴장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굶지 않을까를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때부터는 별다른 걱정이 없어지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이윤추구단체’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모든 것이 채워져 있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쾌락을 이끌어낼 것을 고민합니다.
결국 만들어야 하는 것이 ‘새로운 걱정’입니다. 사람들이 걱정이 없어지고나면 긴장감이 없고 아쉬운 것이 없어지니 ‘걱정’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를 파는 것이 가능한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아마 냉장고를 집안의 장식품으로라도 사게 만들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그런 필요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라면 아마 사막에 온열기를 팔 수도 있을 것입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이들이 늘어갑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평화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이미 가득 차 있고 남은 것은 정말 신경써야 할 일에 내어 놓아야 하는데 새로운 걱정이 생겨나고 그것을 위해서 안달복달하기 시작합니다.
나눌 여력따위는 없습니다. 자기 핸드백을 신종 상품으로 새로 사야 하기 때문에 나눠줄 여유가 없습니다. 아니, 사실은 ‘나눈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누는 것도 뭔가 이득이 있을 때에 ‘투자’하는 개념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정말 상대를 위한 필요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주고 나면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하느님에게라도 따질 기세로 나눕니다. 그러니 ‘받을 상은 이미 받은 셈’입니다.
실컷 오른손으로 자선을 하고 그것을 왼손 만이 아니라 가능하면 온 세상이 다 알게 만드는 이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너끈히 명예를 얻었으니 다른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과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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