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따스한 마음을 찾는 이들과 그것을 소유한 자들은 서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대상부터 세상의 자녀들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의 자녀들은 자신들끼리 영광을 주고 받으면서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만납니다. 언뜻 상대를 사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사랑하지 않지요. 다만 자신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상대를 찾아다닐 뿐입니다. 그들은 서로 칭찬하고 추켜 세우지만 실제로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속으로는 상대를 비난하고 깔보는 경우가 더 많지요.
참된 사랑을 찾는 이, 그 여정을 시작하는 이는 시선을 돌립니다. 한 방향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지요. 그것은 세상의 자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역입니다. 값비싼 상품의 원래의 가치는 그 제품의 원가가 아니라 그 제품의 필요성입니다. 물론 허영심이 많은 이들은 그 모든 것이 제 값을 한다고 하고 필요하다고 하겠지요. 그러니 그들은 장님의 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앞의 기본적인 겸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지요.
부자가 가난한 이들과 ‘우정’을 맺을 리가 없습니다. 부자는 오직 부자들의 부류와 섞일 뿐이지요. 가난한 이들은 부자들과 어울리고 싶어하겠지만 부자들의 요구조건에 미달되기에 그럴 수 없습니다. 때로 ‘사회적인 프로그램’이 그 둘을 조우하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느님의 자녀들은 서로를 찾습니다. 그들은 별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봅니다. 아니, 사실 말이라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자화자찬하는 사람치고 실속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거의 허황되고 과장된 말잔치일 뿐이지요. 실제의 그는 외롭고 고독하며 공허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내면의 어두움을 없애고자 외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속여도 속일 수 없는 현실입니다. 충실한 자의 내면은 충실한 대로, 공허한 자의 내면은 공허한 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지요. 오직 본인만 모를 뿐입니다. 주변에서는 이미 모두 눈치를 채고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그는 이 세상에 흩뿌려진 하느님의 보물입니다.
참된 사랑을 찾는 이, 그 여정을 시작하는 이는 시선을 돌립니다. 한 방향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지요. 그것은 세상의 자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역입니다. 값비싼 상품의 원래의 가치는 그 제품의 원가가 아니라 그 제품의 필요성입니다. 물론 허영심이 많은 이들은 그 모든 것이 제 값을 한다고 하고 필요하다고 하겠지요. 그러니 그들은 장님의 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앞의 기본적인 겸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지요.
부자가 가난한 이들과 ‘우정’을 맺을 리가 없습니다. 부자는 오직 부자들의 부류와 섞일 뿐이지요. 가난한 이들은 부자들과 어울리고 싶어하겠지만 부자들의 요구조건에 미달되기에 그럴 수 없습니다. 때로 ‘사회적인 프로그램’이 그 둘을 조우하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느님의 자녀들은 서로를 찾습니다. 그들은 별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봅니다. 아니, 사실 말이라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자화자찬하는 사람치고 실속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거의 허황되고 과장된 말잔치일 뿐이지요. 실제의 그는 외롭고 고독하며 공허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내면의 어두움을 없애고자 외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속여도 속일 수 없는 현실입니다. 충실한 자의 내면은 충실한 대로, 공허한 자의 내면은 공허한 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지요. 오직 본인만 모를 뿐입니다. 주변에서는 이미 모두 눈치를 채고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그는 이 세상에 흩뿌려진 하느님의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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