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오늘날 고해성사 안에서 마주하는 용서의 은총은 예수님이 생을 헌신하여 얻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선물하기 위해서 당신을 내어 바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은총을 ‘낭비’해 버리고 맙니다. 그저 건성건성 고해성사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기껏해야 주일의 의무를 거른 정도만 고백을 하고 말지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수많은 것들은 다른 누군가의 희생의 산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집에 돌아오면 마주하는 깨끗한 방, 내가 입는 깨끗한 옷은 어머니의 희생의 산물이며, 내가 누리는 수많은 것들은 아버지의 일상의 노동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받을 적에는 아무런 의미를 되새기지 못하다가 비로소 우리가 그 ‘희생의 주역’이 되면서부터 그러한 것들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좋아 보이는 모든 것들 뒤에는 누군가의 눈물과 땀이 존재했습니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수고하여 만드신 창조물이며, 나아가 외아드님의 희생으로 되찾아진 구원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런 복된 곳에 머무르면서 감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출발한 곳에서 시작해서 ‘더 얻어내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려 합니다. 우리의 생의 시작부터 ‘거저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감사가 없으면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의무’에 불과한 것이며, 의무 안에는 자발성과 사랑을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써 감사하게 되고, 감사하면서 기뻐하며, 기뻐하면서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수많은 것들은 다른 누군가의 희생의 산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집에 돌아오면 마주하는 깨끗한 방, 내가 입는 깨끗한 옷은 어머니의 희생의 산물이며, 내가 누리는 수많은 것들은 아버지의 일상의 노동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받을 적에는 아무런 의미를 되새기지 못하다가 비로소 우리가 그 ‘희생의 주역’이 되면서부터 그러한 것들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좋아 보이는 모든 것들 뒤에는 누군가의 눈물과 땀이 존재했습니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수고하여 만드신 창조물이며, 나아가 외아드님의 희생으로 되찾아진 구원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런 복된 곳에 머무르면서 감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출발한 곳에서 시작해서 ‘더 얻어내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려 합니다. 우리의 생의 시작부터 ‘거저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감사가 없으면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의무’에 불과한 것이며, 의무 안에는 자발성과 사랑을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써 감사하게 되고, 감사하면서 기뻐하며, 기뻐하면서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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