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기도 신부님의 질문 답 -30
(Q) 십자가를 진다는 결심은 우리 신앙의 마지막 훈련 단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신부님께서 써주신 글 중에 ‘십자가는 영광’ 이다 그러나 주의 하라하시며
‘십자가에 나의 뜻이 포함된 것은 아니다’ 하셨습니다. 쉽게 이해가 안 됩니다.
매우 단순하게 생각했던 ‘십자가 = 고통’ 그러니까 무조건 받아드림을 살아야 하고
피하지 말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 바로 지금 영원한 생명이 시작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오늘 신부님의 글을 읽으며 이제 까지 생각 했던 것이 모두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더 자세히 깊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겸손을 살아낼 수 있는 지름길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깊은 의미인지 그리고 어떻게 일상생활에서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시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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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요한 13,31-32)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마르 14,33-36)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두고 ‘영광스럽게 된다’고 표현을 하십니다. 하지만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 수난의 잔을 치워 달라고 하느님께 청을 드리기도 하십니다. 그것이 영광이라면 왜 치워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바로 그 사이에 ‘십자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되기를 바라지만 십자가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즐기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을 모두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하면 누구나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기 전의 그 수많은 공부 기간을 견뎌내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누구나 돈을 많이 버는 편안한 직장을 원하지만 그런 직장에 이르기까지 요구되는 인고의 과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가 인류 역사의 명예를 얻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싶기는 하지만 그 등반 과정이 달가운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는 고통이고 수난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영광이지요. 하지만 그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절대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따라서 영광을 거머쥐기 위해서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선택한다고 할 수는 있지만 십자가 그 자체가 좋은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우리가 십자가 없이 영광만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원래 인간은 순수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아우르는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로 만들어졌지요. 우리에게는 육신도 있고 영혼도 있어서 지상과 천상을 아우르는 오묘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죄악이 세상에 깃들기 시작했고 인간은 스스로의 존엄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죄악은 마치 전염병처럼 모든 인간을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했지요.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스스로 천국을 버리고 어둠의 유혹에 젖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이 죄악이 세상에 만연하기 시작했고 모두가 세상에 물든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세상에서 다시 하느님을 찾으려는 이는 마치 흐르는 거대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작은 물고기처럼 된 것이지요. 물고기가 헤엄치는 수고를 해야 상류에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마치 우리가 뭔가 대단한 일을 떠맡는 것처럼 스스로를 들어높이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만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주어지는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갈 뿐이지요. 우리 스스로의 오류에서 벗어나고 또 끊임없이 밀려드는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십자가야말로 우리의 길을 잡아주는 지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설령 우리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우쭐거려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선의 근원은 하느님이시고 우리가 선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선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카 17,10)
십자가를 구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십자가를 일상 안에서 살아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턱대고 모든 고생스러운 일을 다 떠맡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웅도 아니고 생각만큼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다만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면 됩니다. 많이 맡은 사람은 그만큼을 수행해 내면 되고 적게 맡은 사람은 적게 맡은 대로 수행해 나가면 됩니다. 가정의 책임을 맡은 사람은 가정을 충실히 꾸리고, 공동체의 책임을 맡은 사람은 공동체를 꾸려 나가면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방법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지고 쓰러져버릴 십자가를 맡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능력에 가장 합당한 십자가를 맡기시는 분이십니다.
거듭 말하지만 십자가가 쉽고 편한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우리를 조금은 불편하게 하고 성가시게 하고 또 때로는 고통스럽게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 영광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 벅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안에서는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지상 생활이 끝난 후에 우리에게 합당한 상급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묵묵히 잘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지상에서부터 십자가의 보상을 바라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때그때마다 합당한 위로를 주시겠지만 절대로 십자가 자체를 없애거나 그 십자가에 절대적으로 상응하는 엄청난 상급을 내리시지는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영원의 보상을 주고 싶어 하시니까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라져버릴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더 큰 선물을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십니다.
댓글
성경말씀을 읽어도 일상에서 적용하는 게 어려웠는데
신부님의 구체적이고 명료한 글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습니다. 확실히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건 많은 변화를 요하네요.
찬바람 부는데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유투브도 프리미엄으로 다운받아서 등하교길에 지하철에서 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