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1코린 4,1-2)
관리인은 주인이 아닙니다. 관리인은 맡은 것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관리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거룩한 직분을 받은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바오로 사도의 표현처럼 ‘시종’이고 ‘관리인’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다루는 것은 관리인 본인의 소유가 아닌 것입니다. 그들이 거행하는 성사와 전례, 그 밖의 모든 축복 예식들은 본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본인이 잘나서 그러한 것들을 거행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 주인은 하느님입니다. 따라서 관리인은 ‘성실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말의 의미는 주인의 뜻을 잘 알고 주인의 마음에 들게 그 일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실한 사람입니다.
헌데 주인이신 하느님은 무엇을 원하실까요? 이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를 모르는 관리인은 관리인이 아닌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어떻게 맡은 것들을 관리하겠습니까? 주인이 돈을 좋아해서 돈계산이 철저하길 바라면 그렇게 해야 하고, 주인이 권력을 좋아해서 휘하의 사람들이 복종하길 바라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헌데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과연 무엇을 바라실까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그 직분을 맡은 시종이자 관리인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엇일까요? 세상은 사랑을 왜곡해 버립니다. 사랑을 남녀 간의 일로 치부해 버리고 아주 천박한 것으로 뒤바꾸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사랑은 대중가사에 나오는 그런 밀당이 아닙니다. 사랑은 헌신이고 의지적 선택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도록 결심하는 것이고 자유로운 선택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사랑을 강요할 수 없고 강제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온전한 자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자유를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 쓰지 않고 우리 개개인의 탐욕을 채우는 데에 사용해 버리고 말았지요. 그것을 ‘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나의 자유를 남용하는 것을 죄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 관리인들은 그러한 이들이 다시 하느님에게 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가르쳐야 하지요. 하느님이 누구신지 일깨우고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가 이웃을 미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것이 관리인의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 밖의 일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어느 시설을 꾸리고, 건축을 하고, 기관을 맡아서 운영하는 것은 모두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부수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순서가 뒤바뀌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워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관리인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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