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코헬 3,11)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지구 상에 살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실 거의 모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때로 사람들을 만나면 볼리비아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고 하면서 마치 볼리비아를 잘 아는 듯이 이야기를 하지요. 하지만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것은 편집되고 꾸며진 것들입니다. 생생한 이야기가 절대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곳의 기후며 냄새며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이 모두 담길 수가 없는 셈이지요. 결국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하는 모든 말은 ‘편협’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자신들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것이 분명한 볼리비아의 현실이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 이들 앞에서 저는 가만히 들을 뿐입니다.
하느님은 영원 안에 머무르시는 분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모든 관점을 바라보시는 분이시지요. 숨은 것까지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생각을 헤아리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다만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께 우리의 의지를 맡겨 드릴 뿐이지요.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거룩한 영원의 뜻을 펼치시는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속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현재’만이 존재합니다. 과거는 우리가 현재 기억하는 것이고 미래는 이루어질 현재이지요. 우리는 방금 지나간 시간도 어찌하지 못합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저는 현재 만을 어찌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미 쓰여진 글을 수정하는 것은 과거에 손대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서 수정이라는 작업을 하는 것 뿐이지요.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소중한 현재입니다. 그리고 이 현재는 언제라도 ‘영원’과 맞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해서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땅에 만드신 모든 피조물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그 일을 수행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분을 ‘신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에 맞닿을 수 있는 수단,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거룩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모으고 쌓은 모든 것은 우리의 죽음과 더불어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찰나에 스러져 버릴 것들에서 마음을 비우고 영원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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