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언 21,2)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한 것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자체로 이미 길을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한 것이 있다면 모두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드러내어도 하느님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배경, 자신이 노력해서 쌓아올린 모든 것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걸 자랑하고 싶어하지요. 즉, 그 자체로 이미 스스로 하는 것을 올바르고 좋은 것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남에게 드러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멋들어진 자동차를 새로 산 것이 왜 자랑거리가 됩니까? 자동차는 필요에 의해서 구입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일 내가 하는 일에서 자동차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사면 되는 것이고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좀 더 크고 튼튼한 차를 필요로 하고 지금 내가 벌어들이는 수입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헌데 누군가에게 그 자동차는 곧 자신의 자랑거리로 변하게 됩니다. 마치 그 자동차가 자신의 위대한 능력을 드러내는 듯이 생각을 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교만이고 허영일 뿐입니다. 자신이 그닥 쓰지도 않고 자신에게 필요도 없는 차를 샀다는 걸 자랑하려는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일 뿐이지요.
남들이 보기에는 위대해 보이는 어떤 일이나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남들이 따지 못한 학위를 따거나 남들이 가지 못한 곳을 갈 수 있었다는 것, 혹은 우리가 다른 이를 돕는 선을 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자랑이 되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가 전혀 다른 나라에서 아무런 기회도 없이 태어났더라면 애시당초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 되었겠지요. 우리에게 존재하는 모든 좋은 것은 하느님의 선물인 셈입니다. 그러나 자랑하는 이들은 그 모든 것이 자신들의 것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마음 깊은 곳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숨은 생각에 따라 하느님은 분별을 하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지요.
마치 예수님이 봉헌함에 돈을 넣는 이들을 보시다가 가난한 과부를 극찬한 것과도 같습니다. 수많은 부자들이 넘쳐 흐르는 데에서 지극히 일부, 그것도 아까워하면서 동시에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교만에서 넣은 수많은 돈보다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모두 봉헌한 동전 두 닢을 예수님은 두둔하셨습니다. 왜냐면 그분에게 숨겨진 마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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