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루카 6,41)
왜 우리는 나 자신의 오류보다 타인의 오류를 바라보는 것을 더 선호할까요? 왜냐하면 그것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류를 스스로 직시하는 것은 아픔을 동반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서 찬양할 만한 것, 칭찬할 만한 것을 봅니다. 그리고 타인에게서는 그들의 오류를 더 쉽게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오류를 보는 것은 나를 전혀 아프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오류를 보고 수정해주는 것은 나를 더욱 고귀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지요.
이런 일련의 내면의 움직임이 바로 타인의 오류를 더 쉽게 바라보고 반대로 나의 오류를 감추려 드는 원인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지요. 우리 스스로를 두둔하고 타인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오류가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분의 어머니 성모님만이 완전하다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오류와 잘못, 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먼저 시선을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나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채로 타인을 재단하겠다고 하는 것은 비뚤어진 자를 들고 상대의 길이를 재겠다고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나름대로 명철한 판단을 내린다고 하지만 우리의 소위 그 ‘명철한 판단’은 증오 속에서 가장 완성됩니다. 우리는 사랑할 때에는 너그러이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증오가 시작되면 가장 날이 선 칼을 집어들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심판은 증오 속에서 성장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오류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겸손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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