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루카 14,28)
탑을 세우려면 공사 경비를 계산해야 합니다. 하지만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정말 탑일까요? 아닙니다. 복음은 비유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하는 것을 묻고 있지요.
하지만 먼저 탑의 비유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이해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비유의 요소를 원하는 것으로 바꾸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원하는 직장을 구하려면? 원하는 부동산을 매입하려면?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지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거기에 소요되는 것들 잘 따져 보아야 하고 그것을 모두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복음이 우리에게 건네는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과연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미 여러가지 요소를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26-27)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33)
복음은 우리에게 ‘도전’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마땅히 아끼고 가꾸어야 할 것 같아 보이는 것을 복음은 미워하라고 하고 버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오직 이런 버림과 내어바침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제 우리는 앉아서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정말 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가?’ 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서부터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뚜렷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예수님의 가짜 제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예수님의 제자인 척 할 뿐이지요. 그들은 사실 세상을 더 사랑합니다. 결정적으로 그들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에게 도전이 주어질 때입니다.
도전 앞에서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집니다. 세속적인 그들이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은 바로 신앙이 될 것입니다. 사실 신앙은 얻고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피를 나누어 줄 수는 있어도 생명을 뽑아 버릴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우리 안에서 조금씩 형성되어 가는 것이며 단숨에 상실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 즉 신앙을 잃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애시당초 올바른 신앙을 지니고 있지 않았고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 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 예수님의 제자가 될 리는 만무합니다. 그들은 신앙에 호기심을 갖고 다가서지만 세상이 둘러친 안전선을 절대로 벗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복음이 자신에게 도전으로 다가올 때 그들은 복음을 버리고 세상을 선택합니다. ‘일단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라는 것이 흔히 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정말 복음에 헌신하는 사람은 먹고 살 걱정을 크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자녀들을 먹이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굳은 신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내적 회개를 통해서 예수님에게 다가서기 시작하면 비로소 위의 성경 말씀들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우리에게는 버려야 할 것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버린다는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소유한다는 것과 버린다는 것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합시다. 소유는 단순히 손에 쥐고 있다고 소유한다는 의미가 되지 않습니다. 소유는 나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물건을 쥐고도 소유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물건을 지니지 않고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소유의 의미는 ‘집착’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집착하는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즉 수많은 것들에 집착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가족이 될 수도, 재산이 될 수도, 나의 목숨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하니 우리는 가족에 집착하고, 재물에 집착하고, 건강에 집착하곤 합니다. 우리가 맡은 것을 책임감 있고 성실히 가꾸는 것과 집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이지요.
가족들에게 또 자녀들에게 집착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런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굽니다. 왜냐하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집착하면 자녀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어머니의 위신이 중요할 뿐이지요. 자녀들은 축구를 좋아하는데 어머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대학에 가려면 운동 따윈 해서 안된다고 하면 그 어머니는 자녀의 축구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집착의 일종입니다.
재물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꼭 쥐고 있습니다. 정말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못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재물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일 뿐입니다. 그 증거는 우리가 죽을 때에 드러납니다. 우리는 십원 한 푼 들고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탐욕스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소유를 만들고 그것을 자신의 생애 동안 누리고 살려고 하지요. 하지만 결국 그렇게 탐욕스럽게 모은 돈은 자식들이 유산 문제로 다투게 하는 등 문제를 야기할 뿐입니다.
스스로의 생명에 집착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건강을 돌보아야 하지만 건강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젊음은 젊은 시절에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헌데 나이가 들어서도 어떻게든 젊고 이쁘게 보이려는 것은 일종의 집착일 뿐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희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인생의 과정인데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주름이 느는 것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곤 하지요. 그러나 생명의 진정한 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고 그로 인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하느님을 지니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방법은 이러한 소유에서,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처절하게 붙들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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