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지혜 3,9)
위에 언급된 모든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저 가운데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거나 손으로 쥘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신뢰, 진리, 믿음, 사랑, 은총, 자비, 거룩, 선택, 돌봄…
이러한 일련의 내적 가치들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라고 해서 온전히 보이는 것만 의지하고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들도 보이지 않는 흐름을 추구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마피아라도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을 사람을 부하로 두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신뢰’라는 것을 중요시 여깁니다.
또한 그는 부하들이 자신에게 진솔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영악하게 사기를 치는 부하를 좋아할 보스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그들도 ‘진리’가 좋다는 것을 아는 셈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돈, 권력, 명예을 믿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다만 하느님이 아닐 뿐, 다른 무언가를 향해 언제나 주어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소유한 것들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주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지요.
그들도 사랑을 압니다. 물론 지극히 단편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이지요. 그들도 자신의 가족은 끔찍하게 아끼곤 합니다. 비록 돈으로 사긴 해도 그들은 사랑의 대체품으로 다른 이성을 찾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은총 대신에 ‘재수’, ‘복’, ‘행운’을 찾습니다. 즉 자신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무언가에게서 ‘좋은 것’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들도 때로는 자비를 실천합니다. 누군가 지은 죄를 곧이 곧대로 처벌하지 않고 때로는 용서하기도 하지요. 물론 그렇게 해서 그의 마음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들도 선택할 줄 알고 선택 당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뇌물’을 쓰곤 하지요. 지극히 세속적인 선택이지만 그들도 선택받음의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그들은 휘하 부하들을 돌봅니다. 자기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확실하게 돌보지요. 물론 자기 사람이 아니면 철저한 배척을 합니다. 죽음을 마다하고서라도 말이지요.
‘거룩함’ 외에는 그들도 모두 일부분이나마 가지고 있는 덕목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적 오류는 하느님을 통해서 저런 가치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 저런 가치들을 찾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세속적인 목적을 마지막까지 따라가보면 결국 ‘자신의 유익’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이기적인 목적’으로 그에 필요한 덕들을 일부 취할 뿐입니다.
하느님이 없으면 모든 것은 길을 잃게 됩니다. 마치 지구의 자기장이 없으면 모든 나침반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태양이 없으면 거울들이 소용없는 것과도 같지요.
하느님은 가장 악한 이에게도 당신의 은총을 나누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가 숨쉬고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은총을 거두시면 우리는 한낱 숨결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모쪼록 모든 이들이 이 진리를 깨닫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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