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지혜 3,4)
세상에서 의로움을 간직한다는 것은 공기를 넣은 풍선을 물 속에 집어 넣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풍선은 물의 압박을 받고 위로 떠오르려고 하겠지만 풍선에 줄이 묶여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동안은 그럴 수 없게 마련입니다.
의인들이 세상에서 겪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압박을 받습니다. 세상은 의인들이 자기들 식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의인들이 적절히 타협하고 어둠의 행위에 가담하기를 바라지요. 즉 그 풍선이 그만 터져버리고 자신들과 동화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인들,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가슴아파 하시는 일을 마다하는 의인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의인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의인들을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거부감일 뿐이지만 일단 세상 사람들의 눈에 제대로 걸리기 시작하면 의인들에게는 본격적인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합니다. 시기와 질투, 공연한 다툼을 하려고 시도를 하지요. 그래서 의인들도 자신들과 똑같은 부류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인들, 하느님 안에서 머무는 의인들은 그에 대비하는 여러가지 무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겸손과 기도, 온유와 절제, 관용과 사랑과 같은 여러가지 영적인 대응책으로 그들에게 맞서게 됩니다.
세상 안에서는 의인들이 무너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지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의인들의 생은 벌이고 고통이고 괴로움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큰 착각입니다. 의인들은 ‘희망’으로 더욱 부풀어 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압박이 심해질수록 의인들의 내면에는 희망의 싹이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의인들은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그 승리가 이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뿐입니다. 그들은 영원 안에서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이땅에서 승리하는 것 같은 이들, 모으고 쌓으면서도 나눌 줄 모르던 그들은 완전히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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