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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일행을 시중든 여인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루카 8,3)

재산, 재물이라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헌신해서 모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러한 것들을 자신의 생명인 양 아끼곤 하지요. 왜냐하면 실제로 자신이 투자한 생명의 일부분이 물건이 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주인이 누구신지 잘 압니다. 생명의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시지요. 그래서 재물에 대해서도 원 주인의 목적대로 사용할 줄을 알게 됩니다. 즉 자신에게 무엇이 있든 그 모든 것의 원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올바로 인식하고 있지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게 있는 재산을 올바른 곳에 쓸 줄 압니다. 단순히 모으고 쌓는 것, 혹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것이지요. 그들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찾는 데에 눈이 열려 있으며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스스럼 없이 내어줄 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주변에는 바로 그런 이들이 존재했습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 이들이지요. 그들은 예수님과 그 일행을 위해서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내어놓는 데에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내어놓지 못해 안달했겠지요.

그들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했다면 예수님이 그들이 하는 일, 즉 그들의 얼마 안되는 재산으로 당신의 일행을 돕는 일을 가로막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유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마음 깊은 곳으로 삶의 본질을 체험하게 된 이들이었지요.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부유한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여전히 부유하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탐욕은 하늘에 가 닿아 있으니까요. 그들은 언제나 목마르고 굶주린 영적으로 불쌍한 이들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올바로 알았더라면 참된 주님을 알아뵙고 기꺼이 가진 것을 내어줄 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과 다를 바 없지요. 하지만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단단히 굳어진 돌같은 마음을 바꾸시어 살심장을 넣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댓글

Unknown님의 메시지…
아멘
신부님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Unknown님의 메시지…
아멘
신부님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익명님의 메시지…
아멘 신부님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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