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시고 기도를 마치신 뒤에 제자들에게 가시며 제자들과 더불어 평지에 이르러 군중에게 다가서십니다. 이 일련의 흐름은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영적 이동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가까이 머무를 때에 우리는 하느님 가장 가까이, 영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 머무르는 셈입니다. 그리고 제자단은 그 아래에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고 주님을 만나게 되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가장 낮은 곳에 머무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거기 있는 것은 높이 올라간 이들이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만나기 위함이지요. 거꾸로 말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이들은 낮은 곳에 머무르는 이들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혼자 고상하고 거룩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낮은 곳에 머무르는 이들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우리가 천박하다고 생각하고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만나러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높은 곳으로 기도하러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때로 신앙 안에서 ‘저 혼자 잘난’ 신앙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높이 올라가는 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자단인 것이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저 높이 있으려고만 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고만 하지 낮은 곳에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거룩함은 ‘위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가서 힘을 실어주고 꺼져가는 것에 불을 지피고 쓰러져가는 것을 붙들어 일으키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은 높은 곳에 올라가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 목적으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그렇게 부르신 것이지요. 우리가 있는 이유는 군중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달리는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일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끼리 모여서 잘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입니다. 가서 군중을 만날 때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그 누구도 올라가지조차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위에서부터 오는 것을 얻지 못해서 줄 것도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슬픈 모양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루카 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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