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외적으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으로도 성장을 이룹니다. 그래서 사람이 외적으로만 크고 안으로 자라지 못하면 미숙한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이 ‘내적 인간’이라는 것은 학식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영혼의 강도’라고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
단단하게 훈련된 영혼이 있는가 하면 나약한 영혼이 있습니다. 단단한 영혼은 마치 갑옷에 둘러싸인 몸처럼 주변의 공격을 잘 막아냅니다. 따라서 영적인 공격에 강합니다. 누군가가 싫은 소리를 해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고 크게 영향을 받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나약한 영혼은 넝마를 입은 비쩍 마른 몸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거기에 며칠을 굶어서 힘도 없는 몸과도 비슷합니다. 그런 몸은 아주 미약한 세균에도 쉽게 병에 걸리고 아파서 며칠을 누워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영혼은 주변의 유혹에 약하고 전적으로 수동적일 뿐 자신의 자유 의지가 필요한 일에 취약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겉은 멀쩡하나 속이 텅 빈 강정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가 국회 의원이든, 의사든, 변호사든 상관이 없습니다. 영혼이 나약한 사람은 그저 수동적으로 자신의 육신을 숭배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을 이루지 못합니다. 무엇이 선인지 올바로 분별하지도 못합니다. 세상이 좋다는 것이 좋은 것인줄 알고 처세술 책에 적힌 것이 좋은 것인 줄 압니다.
반대로 영혼이 강한 사람은 목표를 뚜렷이 설정하고 살아갑니다. 그 목표는 바로 하느님이고 그분이 허락하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그 방향을 향해서 하루하루 쉬지 않고 나아갑니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고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며 쓸데 없는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사랑’ 뿐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는 세상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내적으로 강한 사람, 영혼이 튼튼한 사람을 만나면 기쁘고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겸손하고 온유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물론 반대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행실이 올바르지 않거나 생각이 비뚤어진 사람은 영혼이 튼튼한 사람 앞에서 불편함을 느낍니다. 왜냐면 그런 이들에게 영혼이 튼튼한 사람은 성가심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가두고 있던 빌라도를 떠올려 보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겉으로 보이는 우리의 외모나 우리가 지닌 직위나 학식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은 과연 어떤 상태에 있을까요?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우리를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을 시작하실 것이고 우리의 영혼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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