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1코린 15,19)
사도들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사도들은 주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해서 주님을 신뢰하게 되었으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아직 오지 않았지만 반드시 오게 될 일에 대해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믿기 때문입니다. 제 역시도 숱한 고난이 있었고 지금도 인간적으로는 힘든 일을 떠맡고 있지만 그 일을 기쁘게 하는 이유는 그 일을 주시는 분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이 끝났을 때 그분께서 저를 당신 나라에 받아들여 주실 것을 믿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직 현세만을 위해서 이런 일들을 한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들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왜냐면 도무지 이런 일들로는 현세 안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가르치는 것으로 돈을 벌겠다고 다짐하는 사람, 하느님을 가르치는 것으로 명예와 권력을 얻겠다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소위 ‘거짓말’을 끊임없이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가르치는 것은 사람들에게 영원을 기다리게 하고 현세의 고난을 잘 견뎌 나가 사랑 안에서 믿음을 품도록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헌데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가르치는 그 본인은 현세 안에서의 자리를 마음 속으로 바라고 있다면 그는 정말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며 거짓 투성이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비록 그는 세상 안에서 얻는 것으로 호위호식 할 수는 있겠지만 다가올 마지막 순간 때문에 결국 불안 속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에 희망을 둡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상급을 얻을 때까지 우리는 달리고 또 달릴 것입니다. 지상에서의 고난은 영원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이들도 그리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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