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루카 9,9)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이 사람일까 저 사람일까 하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합니다. 하지만 헤로데는 예수님의 본질은 온데간데 없이 바로 요한을 떠올립니다. 자신의 내면에는 요한에 대한 두려움, 즉 의로운 이를 합당한 이유없이 살해한 자신의 죄스러움이 들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 내면에는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사용해 저지른 모든 일의 결과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원을 결정하게 됩니다. 행여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나 자신과 하느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영원의 삶 안에서 마주해야 할 분은 하느님이시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하느님을 잊으면서 동시에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도 잊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에 대한 희망을 잃은 그들은 지상의 삶에 치중하게 됩니다. 온갖 탐욕과 이기심에 갈수록 더욱 물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하느님으로 인해서 세상의 것들에서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세상을 이용하지만 세상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거룩한 결과 역시도 우리의 마음 속에 조금씩 쌓여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이미 이 지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훗날 맞닥뜨릴 현실, 즉 하느님과의 만남 앞에서 우리는 그분을 기쁘게 맞아들일 수 있을지, 아니면 두려워하고 수치스러워하며 그분을 피하려고 할지는 이미 시작된 일이지요. 그 선택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결과는 우리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입니다. 헤로데처럼 자신의 죄책에 시달리며 다가오는 구세주를 의심하는 일은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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