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루카 12,4-5)
예수님은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씀을 하십니다. 육신을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으로 ‘육신의 죽음’을 그냥 스리슬쩍 넘어가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신을 어떻게든 살리고자 기를 쓰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죽음인지 잘 알고 있지요. 육신은 당연히 죽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순환 고리 안에 있는 것이지요. 진짜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 아닙니다. 진짜 죽음은 영혼의 죽음입니다.
한번은 죽는 인생인데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얼마나 삶을 오래 질질 끌다가 죽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24살에 죽었지만 성녀가 되었고 사람들로부터 복된 삶이었다고 칭송을 받습니다. 하지만 탐욕에 가득찬 늙은이가 90살까지 질질 삶을 끌고 가다가 결국 죽으면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써야 하는 것은 영혼의 생기입니다. 영혼의 생기라는 것은 선하고 의롭고 진실된 영혼의 기쁨을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영혼이 생생히 살아 있을 때에는 그 어떤 외적인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죽음이 오더라도 우리는 부활의 희망을 굳게 지니고 있겠지요.
하지만 영혼이 이미 죽어있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며 그들의 육신이 죽음을 겪을 때에는 진정한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일상이 하느님과 거리를 두고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포가 아닙니다. 오히려 ‘경외’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포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게 생활할 때 우리 내면에서 죽음을 대하면서 겪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경외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당합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분을 경외하십시오. 그분은 당신의 의로움으로 영혼을 지옥에 넣을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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