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갈라 5,19-21)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핑계 거리를 찾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둘러댈 것이고, 적개심을 지니고 분쟁거리를 찾는 이들도 자신들이 하는 일은 정당하고 마땅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정당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행위에 진정한 의로움을 주는 분은 오직 하느님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숨은 일도 보시는 분이시며 그들이 하는 일의 근본을 분명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원래의 목적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정당화 될 수 없는 행위들이 있으니 바로 바오로 사도가 열거한 위의 내용들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열매들을 나열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갈라 5,22-23)
앞서 언급한 내용들과는 반대로 이러한 것들은 그 자체로 좋은 것들이며 이러한 행위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사를 빠지지 않고 나가는 것보다 한 번의 미사를 나가더라도 기쁘게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좋은 신심 수단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교만해지느니 차라리 평화로이 설거지를 하는 것이 더 나은 법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엉뚱한 것들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성령의 열매들을 전혀 맺지 못하고 오히려 소위 그 ‘거룩하다는 행위’를 바탕으로 분쟁을 일으키고 격분하고 시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분별력을 올바르게 활용하여 육의 행실을 멀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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