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회개, 보속과 희생의 메커니즘
영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배열해 보도록 하고자 한다.
먼저 한 인간이 죄를 짓는다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자.
가장 쉽게 드러나는 유형은 '계명을 어기는 것'이지만
보다 근본에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핵심이다.
모든 죄는 빛에서 멀어지는 것, 진리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죄를 지으면 마치 멀쩡하던 신문지 한 장에 구멍이 뻥~ 뚫리는 것과 같다.
'회개'라는 것은 굉장히 찰나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방향전환'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구멍을 뚫던 이가 더 이상 뚫는 걸 멈추고,
이제는 구멍을 메꾸고자 노력하는 그 순간을 말한다.
그래서 회개는 언제 어느 순간에도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 바뀌어진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다.
왜냐면 끊임없는 유혹이 우리를 다시금 옛 인간의 상태로 돌려 놓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회개'의 정점으로 드러나는 것이 '고해성사'이다.
하지만 고해성사는 회개의 표지를 사제의 사죄경을 통해서 받는 것이고,
이 '회개'는 그 이전에 우리의 내면에서 '성찰, 통회, 결심'을 통해서 이미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이 구멍을 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보속'이라는 개념이다.
헌데 이 구멍은 단순히 나의 영혼에만 뚫려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의 영혼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 구멍을 뚫어놓는다.
나는 나의 보속도 행해야 하지만 나로 인해 영향을 입은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도 보속을 해야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보속의 방법으로는 '기도, 단식, 자선'이 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보속의 근본 방향은 죄의 반대방향
즉 하느님에게로 나아감이다.
'하느님에게로 나아감' 이 근본의 '사랑'이라는 방향성을 잃은
'보속'의 행위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기도가 남에게 드러나기 위한 것이고,
단식을 하면서 소문을 다 내고,
자선을 하면서 가난한 이를 업신여긴다면,
이건 보속의 행위가 아니라 도리어 교만의 행위이고
죄에 죄를 더하는 행위들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알아보아야 할 것은 바로 '희생'이다.
'희생'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 죄를 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메꿀 수 없는 현세의 사람들이나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내가 대신 그 죄를 메꾸어 주는 것을 말한다.
이 희생은 영혼이 깨끗한 이들이 실천할 수 있다.
왜냐면 영혼이 어두운 이들은 자신의 '회개와 보속'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희생의 유형은 정말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근본 방향은 '하느님을 향한 지극한 사랑'으로
현세의 마땅히 누릴 것들마저도 포기하는 행위를 말한다.
물을 마시는 것은 당연히 누릴 권리임에도,
누군가는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목마름'을 봉헌할 수 있다.
밥을 먹는 것은 당연히 누릴 권리임에도,
누군가는 이를 세상에서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위해 봉헌할 수 있다.
(물론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하는 건 역효과라는 걸 잊지 말자.
이런 추잡한 생각으로 희생을 하겠다고 나서는 인간은 그 영혼이 불쌍할 따름이다.)
이 '희생'의 아름다운 행위로 교회가 내세우는 것이 바로 '전대사'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보속'을 위해서 이 '전대사'를 얻을 수 있지만,
나아가 영옥 영혼들을 위해서 봉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개략적으로 이 영혼의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는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이성적인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이해가 빠를 것이고,
감성적인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차라리 좋은 영화 한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