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비유가 적절히 담긴 글이나 책을 만나는 건 설레는 일이다. 세상엔 그저 흘긋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가벼움이 느껴지는 수많은 것들이 많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몇 번만 사귀어도 그 존재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진솔한' 사람을 찾게되고 글과 책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시절에 읽던 책을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전에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진중함을 이 책이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될 때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전에는 그저 한 권 떼었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서 허겁지겁 글자들을 눈으로 쫓아다니기에 바빴다면, 이 두 번째의 기회에서는 그 글자들 안에 함축된 작가의 사상에 좀 더 다가설 수 있게 되고, 그 작가와의 은밀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아직 손을 제대로 대지 못한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성경'이다. 이 책은 손에 들때마다 경이로움이 가득하다. 그 책을 쓴 이들을 넘어서서 느껴지는 '영원'의 빛 때문이다. 미사 강론 때문에라도, 성경 강의 때문에라도 신약은 어떻게든 펼쳐보고는 있지만 구약은 그 방대함도 방대함이고 내가 어떤 준비를 갖춰야 할는지 몰라서 섣불리 다가서기가 힘이 든다.
소위 성서학이라는 걸 공부하신 분들은 각 권의 역사적 배경 및 각 단어의 원래의 의미와 그 문화권 안에서의 해석 등을 찾겠지만, 성경은 그 말마디 하나하나를 다 해체해서 뜯어발겨보았다고 해서 읽었다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 안에 숨어 계시는 성령과 만남을 이루어야 한다.
행여 성경을 읽지 않고도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사랑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오늘날의 하느님의 말씀이 되어 그분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이웃을 향한 조건없는 사랑 안에서 이들은 소위 성경을 공부했다는 이들보다도 더 훌륭하게 성경을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도 나는 한 토막의 성경 구절로 내 영은 기뻐하고도 남는다. 성경의 어느 구절을 펼쳐보더라도 그 안에 숨어 계시는 성령과의 만남을 통해 똑같은 기쁨을 얻어 누릴 수 있다.
오늘 너희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의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젊은 시절에 읽던 책을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전에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진중함을 이 책이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될 때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전에는 그저 한 권 떼었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서 허겁지겁 글자들을 눈으로 쫓아다니기에 바빴다면, 이 두 번째의 기회에서는 그 글자들 안에 함축된 작가의 사상에 좀 더 다가설 수 있게 되고, 그 작가와의 은밀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아직 손을 제대로 대지 못한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성경'이다. 이 책은 손에 들때마다 경이로움이 가득하다. 그 책을 쓴 이들을 넘어서서 느껴지는 '영원'의 빛 때문이다. 미사 강론 때문에라도, 성경 강의 때문에라도 신약은 어떻게든 펼쳐보고는 있지만 구약은 그 방대함도 방대함이고 내가 어떤 준비를 갖춰야 할는지 몰라서 섣불리 다가서기가 힘이 든다.
소위 성서학이라는 걸 공부하신 분들은 각 권의 역사적 배경 및 각 단어의 원래의 의미와 그 문화권 안에서의 해석 등을 찾겠지만, 성경은 그 말마디 하나하나를 다 해체해서 뜯어발겨보았다고 해서 읽었다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 안에 숨어 계시는 성령과 만남을 이루어야 한다.
행여 성경을 읽지 않고도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사랑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오늘날의 하느님의 말씀이 되어 그분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이웃을 향한 조건없는 사랑 안에서 이들은 소위 성경을 공부했다는 이들보다도 더 훌륭하게 성경을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도 나는 한 토막의 성경 구절로 내 영은 기뻐하고도 남는다. 성경의 어느 구절을 펼쳐보더라도 그 안에 숨어 계시는 성령과의 만남을 통해 똑같은 기쁨을 얻어 누릴 수 있다.
오늘 너희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의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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