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루카 4,43)
사람들은 가치를 알지 못하면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치를 알기 시작하면 그것을 소유하려고 듭니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와 무관한 사람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소중히 여기는 볼리비아의 수많은 이들은 한국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저를 소중히 여기고 기억하고 떠올리고 기도해 주고 격려를 전해 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가치를 알기에 그들을 소중히 여기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의 가치를 알기 시작하게 됩니다. 헌데 이때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을 ‘소유’하고 싶어하니까요. 즉 그들이 오직 우리를 위해서만 머무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소유의 성향은 모든 것에 두루 미쳐 있습니다. 길가다 보게 되는 아름다운 꽃은 우리가 바라보면서 즐기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럼 싱싱하게 살아남아 다른 이들도 그 꽃을 즐기게 되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그 꽃을 꺾어서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럼 그 꽃은 그때부터 원래의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니 누군가 어떤 좋은 것을 지니고 있으면 그가 가진 그것을 더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헌데 그 재주를 ‘나의 것’, 혹은 ‘우리의 것’으로 삼고자 욕심을 부리면 그는 원래의 생기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일을 성심껏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본래의 가치를 아예 알지 못하거나 또는 알고서 그것을 자신의 몫으로 소유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좋은 것이 다른 이에게 전해지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쓰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선교에 헌신하지 못하는 커다란 두 가지 이유가 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본래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알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 하지 않고 혼자서만 알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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