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요한 1,46)
- 그는 학위도 없고, 출신도 유별나지 않고, 인맥도 없고, 고향도 보잘 것 없습니다.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주변 것들로 보건데 그는 볼품없는 사람에 불과하군요.
- 하지만 당신이 진리에 대한 뜻이 있다면 스스로 다가와서 그를 직접 보고 분별하십시오.
색깔을 알려면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색깔을 듣는다고 해서 그 색깔을 분명히 알지는 못합니다. 소리를 알려면 그 소리를 직접 들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진솔함과 책임감, 신뢰도를 알아보려면 그를 만나 보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어느 위대한 대기업 출신이거나 무슨 박사 학위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그의 영혼을 알기 위해서는 그를 직접 만나 보아야 합니다.
나자렛에서도 진솔한 영혼이 나올 수 있고, 반대로 예루살렘에서도 타락한 영혼이 나올 수 있습니다. 장소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볼리비아에서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이 있을 수 있고, 이탈리아에서 깡패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외적인 것을 너무나도 중요시 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내면을 분별해 버리고 맙니다. 사실 우리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그를 만나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서로 만나지 않습니다. 만날 줄을 모릅니다. 단지 같은 자리를 공유하고 있다고 두 영혼이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뉴스 이야기거나 드라마 이야기거나 서로의 자랑질 뿐이라면 그것은 전혀 만남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들은 서로 만났습니다. 기쁨 가운데 삶을 나누고 공유하였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만나지 않습니다. 거리마다 카페가 생겨나도 사람들이 득실득실하지만 우리는 서로 만나지 않습니다.
참된 만남은 진솔한 개방으로 이루어집니다. 상대를 향한 헌신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만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을 만나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진솔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선과 진리를 배우지 않고 다른 이와 아무리 잦은 만남을 가진다고 해도 그것은 진솔한 만남이 되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성당 건물에만 들어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그저 ‘종교인들의 회합’ 자리에만 가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서로 만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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