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예레 31,33)
오징어는 빛을 보고 달려들고, 나방을 불을 향해 뛰어듭니다. 그들의 내면에 그런 법칙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법을 내면에 새겨 넣은 이는 그 법을 따라 살아갑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이들은 하느님의 법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살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법은 우리를 하느님에게로 이끕니다. 그는 평화를 사랑하고 친절하고 온유함을 선호합니다. 반면 하느님의 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는 다투고 시기하며 다른 이가 행복한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느님스러움은 외적인 형태를 완수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옷을 입는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거룩해서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겉꾸민 위선적인 거룩함은 하느님을 닮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도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 그런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거룩함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위선’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피정’이라는 제목을 달고 함께 모여 어디를 간다고 한들, 정작 가서 강의 시간에는 잠을 자고 어떻게든 도망칠 생각만 하고 대침묵은 온데간데 없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궁둥이를 들썩댄다면 그것은 전혀 피정이 아닌 셈입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어떤 법이 새겨져 있을까요? 사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이런 법을 지니고 살아 왔습니다.
“남들을 이겨라.”
“1등을 해라.”
“일단 무슨 짓을 하든 먹고 살아야 한다.”
“성공을 해라.”
“아름다워져라.”
그러는 통에 우리는 하느님의 법이 무엇인지 점점 잊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법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모두 배웠던 것들입니다.
“정직하라.”
“착하게 굴어라.”
“친절해라.”
“친구를 도와라.”
“화해해라.”
때로는 우리가 열심히 달리던 길을 멈추고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안에 도대체 무슨 법칙이 들어 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방향이 틀어져 있는데 제트 엔진을 단다고 해서 잘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 한 걸음을 나아가더라도 우리는 올바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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