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태 23,17)
눈 앞에 금화를 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탕을 선택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에게 아직 ‘재물’에 대한 가치가 올바로 심겨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숙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 시절의 선택을 한다면 그는 자신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리석음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지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색깔을 선택하라는 것은 어리석은 주문입니다. 하지만 눈을 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고 있어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이는 자신의 책임이 됩니다. 이러한 사람을 두고 눈먼 이라고 합니다.
어리석고 눈먼 이들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의 어리석음과 눈멀음이 타인의 탓이라면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어리석음과 눈멀음은 전적으로 그들의 탓입니다. 그들이 어리석은 것은 깨닫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이 눈멀은 것은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것을 버리고 덜 중요한 것을 탐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피상적인 외적 사물들에 사로잡혀 내적인 것들을 올바로 바라보기를 잊어버렸습니다.
미모를 가꾸면서 내면을 가꾸지 못하는 이, 외적인 경력을 쌓으려 하지만 내적인 지혜를 갈구하진 않습니다. 재산을 늘리고 부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영혼들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 앞에 드러나고 싶어하지만 겸손의 덕을 찾지는 않으며 정의를 내세우고 누군가를 증오할 줄은 알면서 ‘용서’를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단순히 성전의 금과 성전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실생활 안에서 우리는 같은 오류를 얼마든지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다 중요한 것을 얼마든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어리석은 상태와 장님의 상태에 빠져 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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