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루카 12,47)
주인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닙니다. 질문이 틀렸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주인으로 삼고 있을까요? 이것이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너무나도 쉽게 대답할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이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분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지도 않는데 과연 우리가 하느님을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우리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일까요? 일부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우겨댑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당연히 물질적인 축복도 주신다고 하면서 자신이 탐욕스럽게 벌어대는 것을 정당화 하지요.
언뜻 그들의 주장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좋은 것을 바라시니 마땅히 물질적인 축복도 주셔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 실제적인 내용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물질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아니, 이미 주셨습니다. 지구상에는 인간이 사용하기에 넉넉한 자원이 있지요. 우리는 저마다의 필요를 너끈히 채우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한 인간이 자신의 필요를 넘어서서 창고를 메꾸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창고를 끊임없이 늘려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뜻은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셨지요. 하지만 그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쓰지도 않을 물건을 잔뜩 소유하면 행복해지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잠시만 생각해 보면 알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인의 뜻을 되새기기를 포기했습니다. 주인의 뜻을 일상적으로 무시하고 살지요. 우리는 전혀 다른 주인의 뜻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주인의 이름은 ‘세상’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것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라고 하는 물건을 원하고 그것을 사려고 하고, 높은 지위와 권력, 명예를 얻으라고 지시하는 대로 그것을 따라 살아갑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도달해야 만족할지 모르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한껏 높이 높이 올라가지만 정작 그곳에 도달하면 허무감만 느낄 뿐입니다. 그래서 잔뜩 가진 것을 마구 소비하면서 인생을 탕진하고 말지요.
주인의 뜻은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이 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하고 그저 곁에서 우리에게 열심히 외쳐대는 소리를 쫓아서 살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의 뜻 앞에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서로 시기하고 다투면서 살아가기에 너무나 바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돈’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고 그것을 향한 우리의 탐욕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그 행복은 일시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영원한 것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내용이고, 바로 여기에 하느님의 뜻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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