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마태 20,15-16)
마태오 복음의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갑일 때에는 마음 아픈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을일 때에는 너무나 기쁜 이야기입니다. 즉 우리가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를 가정할 때에는 성질이 나는 비유이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미천한 위치에 놓으면 기쁨에 찰 수 있는 비유인 것이지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흔히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과대평가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이미 포도밭에서 고생을 하며 일해 온 사람인 양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의미하는 숨어있는 바는 우리가 하느님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선 우리 자신의 의미, 그리고 하느님이 베풀어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을 너무나도 쉽게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들을 과대평가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채로 본질을 망각한 채 우리가 드리는 외적인 형태가 모두인 것으로 착각하지요. 즉 주일미사를 빠지지 않으면 훌륭한 신자가 되고, 주일 미사 후에 어느 술집에서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셔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식입니다. 양팔을 들고 묵주기도를 바친 후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들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식이지요.
그런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는 스스로를 ‘위대한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실제로는 보잘 것 없고 볼품없는 내면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런 헛똑똑이와 헛열심이를 두고 꼴찌를 첫째의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즉, 겸손하고 무너진 마음을 최고의 제물로 삼으시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후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든지 ‘을’의 위치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때가 되면 세상의 꼴찌들을 첫째의 자리에 놓아두실 것입니다.
(신부님, 첫째가 되기 위해서 꼴찌의 자리에 서겠다는 것은 결국 교만 아닌가요? / 저도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일지라도 꼴찌의 자리에 진득하니 서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으로만 일을 처리하기에 이런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훗날 첫째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라도 좋으니 일부러 꼴찌의 자리에서 그 모든 수모를 감내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꼴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는 진정으로 겸손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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