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이따위 말을 하여, 도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자는 이 백성의 안녕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레 38,4)
우리는 신앙생활을 때로 너무나 쉽게 생각하곤 합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단순히 삶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지요. 그러나 실제 신앙은 단순한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때로 도전이고 박해를 각오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신앙은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을 보장합니다. 하지만 그 영원한 행복에 이르기 위한 과정을 착각하면 안됩니다.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데 하느님이 와서 ‘옛다 받아라’하고 던져주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길들어 가는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
대학 공부라는 것은 대학교에 들어간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맞춤법을 배우고 수학을 배우고 기본적인 상식을 늘려 나가면서 결국 대학교에 들어가서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헌데 부모님이 돈이 많다고 대학교에 엄청난 기부를 하고 그 대학에 억지로 집어 넣는다고 그 아이가 절로 대학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랑을 올바로 누리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그 사랑을 누리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받기만 하는 사람은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인내를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인내 후에 얻어지는 기쁨을 알지 못하지요. 하늘 나라는 이러한 숨겨진 기쁨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더 많은 것을 훈련하고 준비하는 만큼 하늘 나라에서는 더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할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을 전했습니다. 그러니 그는 그만큼 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드러낸 셈이고 그는 하늘 나라에서 자신이 간절히 애원하던 분을 만나면서 그 기쁨을 몇 배로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한 간절함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겠지요.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냥 편하고 좋은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그러한 신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미 영원을 선물하시려고 마음 먹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순례자이며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갈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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