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다니 7,14)
과연 우리는 성경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얼마만한 심각성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잘 읽지도 않을 뿐더러, 읽는다 해봐야 겨우 미사 때일 뿐이고, 또 그마저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 자체에 중요성을 두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 든 말마디들도 별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그보다 얼마든지 더 중요해 보이는 정보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고 신문을 보고, 인터넷 기사를 보고 또 유명하다는 책들을 모조리 읽어야 하지만 성경을 손에 붙들고 있을 시간은 없습니다.
훗날 우리가 크게 후회하게 될 부분입니다. 특히나 가톨릭 신자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 더욱 소홀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매일미사책을 들고 다니면서 성경을 읽는다고 생각하지요.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매일 미사책마저도 신중히 읽지 않고 신부님의 강론도 며칠 지나고 나면 금새 잊어 버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성경을 읽는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상태이지요. 우리가 얼마만한 심각성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법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의 출처를 올바로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서 그 말씀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등학생이 자신이 사탕을 어디에서 얻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과, 한 사업가가 자신이 강남의 땅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를 듣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아마 땅 투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후자의 정보를 돈을 주고라도 살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정보의 종류에 따라서 서로 다른 반응을 하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적지 않은 이들이 하느님에 대해서 소홀합니다. 그리고 다가올 그분의 나라에 대해서도 소홀합니다. 우리는 단지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을 소중히 여깁니다. 하느님의 통치는 영원한데 우리는 그 통치에 귀속될 준비는 하지 않고 이 땅을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살까를 고민하지요.
영원의 나라와 찰나의 나라,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스스로 선택을 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은 이미 지상의 나라에 마음을 빼앗겨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차갑고 냉냉하게 식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마음을 데우실 것이고 다시 당신의 영원한 나라로 초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동참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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