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마태 22,13)
때로 복음서를 보면 좀 심하다 싶은 표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혼인잔치에서 쫓아내면 될 것을 왜 굳이 손과 발을 묶는 것일까요?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게 될 일은 그보다 훨씬 더한 일일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손과 발을 묶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심한 억압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마음이 사로잡혀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어떤 걱정이나 근심에 사로잡혀 가만히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한숨을 쉰 적이 있으신지요? 그것을 떠올려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외적으로만 구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적으로도 얼마든지 구속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기쁘게 살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손길 안에 있을 때에는 기쁘고 즐겁지요. 어린이가 그 맑은 마음으로 기쁘고 천진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 속에 있을 때에는 그 마음이 즐겁고 기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그 자유를 거부하고 자신의 이기성에 사로잡혀 어두움에 빠지게 되면 그 즐거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단순히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답답하고 억압받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지요. 사실 영적인 부분에서는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요한 8,34)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죄를 짓는 이를 보고 기뻐하고 그가 더 죄를 지을 수 있도록 더 큰 유혹으로 종용합니다. 우리가 한 번 엇나가는 길을 걷기 시작하면 전에는 결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도 작은 죄들에 익숙해지면서 더욱 쉽게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은 우리의 자유의지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이는 구속을 당하고 자유를 빼앗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심한 비유를 드는 이유는 그것을 듣고 깨달아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저런 경고들을 무시하고 스스로 그 길에 빠져들지요. 담배를 태우는 사람에게 담배는 건강에 해로우니 피우지 말라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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