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을 때릴 수 있는 것은 물리적인 폭력입니다.
영신을 때릴 수 있는 것은 영적이고 심리적인 폭력입니다.
사람은 단순히 육신으로만 억압 당하고 고통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영신으로도 억압 당하고 고통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아무런 위해가 가해지지 않는다는 이유 만으로
수많은 영적 폭력을 허락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상은 수많은 것들로 사람들의 정신과 영에 폭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사라는 강압을 세뇌하고
나와 다른 이를 비교하여 나에게 필요치 않은 것을 이루도록 강요하며
전혀 내가 아닌 모습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내가 선을 행할 자유를 억압하여 세상의 평균 기준에 따르게 합니다.
그런 여러가지 폭력 속에서 우리는 길들어가며
무엇이 진정으로 선한 것인지
무엇이 진정으로 참되고 고귀한 것인지를 점차 잊어가기 시작하고
세상이 좋다는 것이 좋은 줄로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억압되어 있고 폭력을 당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스스로의 상태에 변화의 의지 없이 만족하며 살게 됩니다.
바로 이를 깨뜨리는 것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정상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극명히 드러내어 주는 것이 말씀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세대에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죄의 뿌리라고 말하고
세상 일을 걱정하는 세대에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찾으라고 하며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복음은 도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쌍날칼과도 같아서 사람 속의 숨은 생각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음에 다가서지 않습니다.
아니, 두려워합니다.
복음에 다가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신앙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괜히 복음에 다가섰다가 자신의 가면이 벗겨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는 이를 모두 알고 있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이들은 그 길의 끝에 있는 빛을 맞이할 것이고,
진리를 거부하는 이들은 그 반대편의 끝에 있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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